한국 예능 프로그램의 ‘가족’ 코드

거실에서 온 가족이 둘러싸여 텔레비전을 보던 시대에서 스마트폰으로 각자의 초세분화된 취향에 맞춰 넷플릭스를 보는 시대. 한국 예능은 시대의 흐름에 유연하게 대처하며 트렌드를 뒤쫓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가족예능은 물론 외관상 다른 내용을 표방하는 예능 프로그램에서도 ‘전형적인 가족’에 대한 환상이 존재한다. <나 혼자 산다>부터 <삼시세끼>까지 한국 예능프로그램에 내재한 가족 이데올로기를 분석해본다.


  1. 들어가며

텔레비전은 급속한 산업화를 통해 도시로 몰려든 노동자들의 효율적인 여가 활동으로 오랫동안 사랑받았다. 스마트폰이 대중화되고 넷플릭스의 알고리즘이 초세분화된 개인의 취향에 맞춘 영상을 추천해주기 전까지 말이다. 텔레비전은 이제 아파트 거실의 유물처럼 보인다. 텔레비전은 인테리어를 위해 의도적으로 감추거나, 다른 방에 배치되기도 하지만 보통은 가족의 공용 공간인 거실의 중앙에 위치한다. 하루종일 집안일을 하다 잠시 휴식을 취하는 주부에게도, 학교와 학원을 마치고 돌아온 아이들에게도, 일을 마치고 돌아온 가장에게도 텔레비전은 삶의 고단함을 잊게 만드는 대중적인 오락거리였다. 

텔레비전은 가정의 경제를 책임지는 가장과 미래의 노동자로서 아이들, 그리고 조력자인 주부 등 전형적인 가족으로 분류하여 프로그램을 제작하면서 다양한 시청 주체들을 어느 정도 예측가능한 시청자 집단으로 통합시킨다. 지상파 텔레비전은 오전 시간대의 아침드라마와 아침방송, 오후 시간대의 교육방송과 어린이 애니메이션, 저녁 식사 시간을 갓 넘긴 시간대의 뉴스와 주말의 가족 드라마까지, 일반적인 가족의 생활 패턴을 전제한 일률적인 편성을 지향하였다. 이는 케이블 시대 전까지 텔레비전이 가정 시청자를 호명하는 방식이었다. 텔레비전은 그것이 위치한 공간부터 컨텐츠까지 ‘가족 이데올로기’를 내세우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드라마는 텔레비전의 탄생 초창기부터 가장 최근까지 ‘가족’의 가치를 두드러지게 내세웠던 효과적인 선전물이었다. 1980년부터 2002년까지 방영된 <전원일기>는 자의 혹은 타의로 상경한 노동자들의 향수를 일으키는 드라마로써 농촌 마을의 가족들을 중심으로 에피소드를 펼쳤다. 이후 김수현 작가류의 대표적인 가족 드라마들(<사랑이 뭐길래>, <목욕탕집 남자들>, <엄마가 뿔났다> 등)은 가족 구성원들 간의 갈등을 주된 축으로 삼으면서 가장 황금 시간대, 즉 모든 가족 구성원이 모이기에 가장 적합한 시간에 방영되었다. 

그러나 점차 예능 프로그램의 화제성이 높아지면서 예능이 드라마만큼 중요한 지위를 점하게 되었다. 한국 예능의 역사를 여기서 언급하기에는 무리이므로 최근 들어 황금 시간대에 예능 프로그램을 편성하는 예 – 나영석PD의 예능 프로그램(금요일 오후 10시), SBS의 <리틀 포레스트>(월-화요일 오후 10시), <미운 우리 새끼>(일요일 오후 9시) 등 – 가 많아지고 있음을 지적하고 넘어가고자 한다. 

이제는 예능이 드라마를 대신하여 ‘가족’의 가치를 내세우는 것처럼 보인다. 199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활동하던 예능인들이 나이가 들어 결혼과 출산을 하고, 리얼버라이어티가 예능의 주된 축이 되면서 가족 예능이 탄생한 것은 어느 정도 자연스러운 수순이었다. 게다가 가족 예능은 모든 연령대에서 고루 화제성을 불러일으키기에 좋은 포맷이었고, <아빠! 어디가?>의 성공 이후에는 마치 흥행 보증 수표처럼 인식되며 관련 프로그램이 급격하게 증가하였다. 

가족 예능 프로그램은 서로가 서로의 컨셉을 따라하거나 차별화를 꾀하면서 가족 구성원 간의 관계 변주를 통해 정체성을 구축하였다. 가장 대표적인 아버지-자녀(<아빠! 어디가?>, <슈퍼맨이 돌아왔다>, <내 딸의 남자들>) 구성부터 부부(<동상이몽>, <아내의 맛>, <별거가 별거냐>, <따로 또 같이>, <싱글와이프>), 친정어머니-남편(<백년손님>), 시어머니-아내(<이상한 나라의 며느리>), 부부-자녀(<오! 마이 베이비>, <둥지탈출>), 딩크족 출연자-조카(<조카면 족하다>) 등 가족 관계에서 구성될 수 있는 모든 시도를 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출산율의 하락과 비혼의 증가로 가족은 점점 와해되어 가고 있고, 이제는 더 이상 온 가족이 함께 특정 시간에 맞춰 텔레비전 앞에 모이지 않는다. 각자 자신의 컴퓨터나 스마트폰으로 유튜브, 클립, VOD 서비스 등을 선택하며 자신의 취향에 맞는 채널과 영상을 선택한다. 텔레비전은 자신의 주된 시청층인 ‘가족’을 타겟으로 할 수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 가족 예능은 폭발적으로 증가하였다. (한국에서 스마트폰의 보급은 2009년부터 이루어졌고, 가족 예능프로그램의 효시인 <아빠! 어디가?>는 2014년부터 방영되었다.) 출산율이 0.9명 이하로 떨어진 시대에 텔레비전은 변화한 시대에 발맞춰 나가기보다 오히려 역행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본 발표는 표면적으로 가족 예능을 내세우는 프로그램보다 쿡방 혹은 리얼 버라이어티라는 수식을 가지는 예능 프로그램에 잠재적으로 나타나는 가족 이데올로기를 살펴보고자 한다. 

2. 어머니의 손맛과 아버지의 사업성 – <수미네 반찬>과 <집밥 백선생>

최근 예능은 리얼리티를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출연자 개인의 가족구성형태, 전문분야, 환경을 고려하여 캐릭터를 다듬는다. 단순한 요리프로그램에서도 메인 패널이 여성인지 혹은 남성인지, 그리고 이들의 직업이 무엇이냐에 따라 전개되는 내용이 달라진다. TvN의 대표적인 요리 예능 프로그램인 <수미네 반찬>과 <집밥 백선생>을 비교해 보면서 이를 구체화하고자 한다.

<수미네 반찬>은 “화려하진 않지만 엄마의 마음이 담긴, 따뜻하고 정갈한 김수미 표 밥상의 매력”으로 프로그램을 소개하고 있다. 이 프로그램은 김수미가 전문 요리사와 남성 연예인을 대상으로 사라져가는 한식문화, 그중에서도 ‘집반찬’(고사리 굴비 조림, 참소라 강된장, 오이소박이, 코다리조림, 노각무침, 고들빼기 김치 등)을 전수하는 포맷이다. 김수미는 손계량 혹은 ‘느낌적인’ 계량을 지시하는데, 이런 엉터리 계량 때문에 전문 셰프도 요리하는데 애를 먹는다(“놀놀하게 구워주세요.”, “요만큼만 썰어주세요.” “(참기름을) 한바퀴 둘러주세요.” 등). 게다가 요리 속도도 빨라서 종종 순서를 놓치기도 하고 중간에 레시피를 빼먹기도 한다. ‘어머니의 요리’는 가족을 대상으로 한 요리이자, 상업화될 필요가 없는 요리로써 전문화, 체계화되지 않았기 때문에 애초에 제대로 따라 하기가 어렵다. 김수미 자신도 어머니로부터 요리를 전수 받았고, 이것마저도 어머니를 일찍 여읜 후 요리의 맛을 떠올리며 스스로 체득한 것이 대부분이다. 그의 요리실력의 비밀은 어머니께 물려받은 ‘손맛’이라고 한다.

<집밥 백선생>은 제목에서부터 ‘선생’이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보다 친근한 느낌의 <수미네 반찬>과는 대조적이다. 김수미가 한복에 앞치마, 머리두건을 착용하고 출연한다면, 백종원은 조리사 위생복을 입고 있다. “‘초간단’ ‘초스피드’는 기본! 주머니 사정까지 고려한 ‘알뜰’ 생계형 레시피”을 취지로 (초창기에는) 요리를 전혀 하지 못하는 세대별 남성이 출연하여(김구라, 윤상, 송재림, 윤박) 요리를 배운다. 백종원은 숟가락과 종이컵이라는 가장 간단한 계량기와 ‘만능양념’으로 집에서 해먹을 수 있는 그럴듯한 요리(굴밥, 함박 스테이크, 어묵전골, 마파두부, 잡채 등)을 알려준다. (앞서 든 예시들에서 ‘요리’와 ‘반찬’의 차이가 느껴지길 바란다.) 쉽고 간단하게 짜인 레시피는 초보라도 도전해볼 만한 의욕을 불러일으킨다.

<수미네 반찬>이 김수미가 먼저 요리를 하고 다른 출연진들이 자신만의 레시피를 제안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면, <집밥 백선생>은 다른 출연진들이 먼저 요리를 하고 – 대부분은 망치고 – 백종원이 정확한 레시피를 교육시킨다. 김수미가 스탭이나 장병, 교민을 대상으로 한가득 상을 차리며 집을 나와 고생하는 사람들에게 ‘어머니의 손맛’과 정을 전파한다면 백종원은 신혼부부 100쌍, LA에 살고 있는 교민 등을 초청하여 레시피를 공유하고 레시피의 ‘유효성’을 검증받는다. 인터뷰이들의 고백은 자신이 얼마나 백종원의 ‘레시피’로 구원받았는지에 대한 고해성사로까지 보인다.

두 프로그램 모두 메인 출연진을 특정한 프레임으로 보도록 의도한다. 요컨대 김수미를 통해서는 ‘그리운 어머니’를 백종원을 통해서는 ‘성공한 아버지’를 상기시킨다. 이러한 컨셉은 비단 한 프로그램에만 그치지 않고 이들이 출연하는 또 다른 예능 프로그램으로 이어진다. <밥은 먹고 다니냐>에서 김수미는 <전원일기>의 복장을 하고 국밥집을 찾아오는 일반인들에게 위로 혹은 충고를 건넨다. 김수미는 제작발표회에서 가족이 모여 식사를 하며 이야기하던 문화가 지금은 사라져서 아쉽고, 해당 프로그램을 통해 이러한 문화를 나누고 싶다고 한다. 김수미는 여기서 손님들에게 잊혀진 밥상문화를 복권하는 상징적 어머니이다. <골목식당>에서 백종원의 사업가 기질은 빛을 발한다. 백종원이 내놓는 솔루션은 절대적이며, 그가 소상공인을 위해 베푸는 정과 선행들은 백종원을 거의 신격화 한다. 그는 (우리들이 대부분 만나보지 못했을) ‘성공한 아버지’이자 ‘자상한 아버지’의 환상이다. 

3. 가족 구성원의 부재 – <미운 우리 새끼>와 <나 혼자 산다>

<미운 우리 새끼>와 <나 혼자 산다>는 결혼적령기의 독신남녀를 다룬다는 공통점이 있다. <미운 우리 새끼>는 표면적으로 독신남녀의 어머니가 출연하여 그들의 일상을 살펴보는 가족 관찰예능을 따르고 있지만 그들의 생활 속에서 발견되는 것은 가족 구성원의 부재이다.

<미운 우리 새끼>의 부재는 ‘다시 쓰는 육아일기’로 관찰의 주체가 어머니이다. “걸음마를 뗀지 470개월이 지났고, ‘엄마’ 입을 뗀지도 480개월이 지났지만 엄마는 아들의 성장기를 다시 쓰려” 한다고 프로그램을 소개한다. 그러나 이 성장일기는 여전히 부모의 돌봄을 필요로 하는 철부지 아들의 성장일기라기보다 결혼적령기를 훨씬 넘긴 출연진을 다루면서 배우자의 결여를 부각시킴과 동시에 가정의 필요성을 주장한다. 어머니들은 자식의 독립을 중립적으로 바라보지 않는다. 자신의 자식들이 혼자서 무언가를 잘 해내고 있을 때나, 잘 해내지 못할 때나 늘 ‘결혼’을 하지 않아서/못해서라고 단정 짓는다. 김건모가 소주트리를 만들거나 초대형김밥을 만드는 에피소드나 박수홍이 앨범을 내거나 클럽에 자주 가는 등의 철없는 행동들은 그들이 아직도 ‘결혼하지 못하는 이유’를 보여준다. 

스튜디오에 출연하는 어머니들은 혀를 끌끌 차며 자신의 아들이 결혼하지 못하는 이유에 대해 확인사살 받는 한편, 예비 시어머니로서 면모를 뽐낸다. 결혼적령기의 여성게스트(송지효, 이다해, 정려원 등)가 출연하였을 때 MC의 단골멘트는 (자신들을 포함하여) 출연자 중 누가 제일 마음에 드는지 이고, 어머니들은 늘 여성 게스트가 좋은 신부감(며느리감)이라며 칭찬한다. 다른 한편, 성공적으로 결혼을 하여 행복한 가정을 꾸려낸 게스트 – 김희애, 유호정, 임창정, 이동건, 윤도현, 이문세, 김민준, 유준상 등 – 는 행복한 결혼에 대한 환상을 증폭시킨다. 그들은 결혼이 얼마나 좋고 배우자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혹은 배우자에게 얼마나 사랑받는지 이야기를 나누며 독신남녀를 결혼하지 못한 실패자로 보이도록 만든다.

초창기에 ‘남자가 혼자 살 때’라는 이름의 파일럿 프로그램이었던 <나 혼자 산다>는 이후 정규로 편성되면서 이름을 바꾸었다. “대한민국 1인 가구 453만 시대”에 각자 다른 사연을 가진 싱글족에 주목하는 이 프로그램은 처음에는 혼자 사는 남성을 연령별로 조명하고, 다양한 세대(20대 서인국, 30대 노홍철, 40대 이광규 등)들의 삶에 초점을 두었다. 과거에는 기러기 아빠, 자취족, 독신남, 아내와 사별한 고령의 출연자 등 다양한 싱글족의 모습을 보여주었다면 회차가 지날수록 20대 후반 40대 초반의 미혼남녀 비율이 점차 늘어났다. 초창기에는 <미운 우리 새끼>에 가깝다고 생각될 정도로 혼자 사는 남성들의 청승맞은 모습을 보여주기도 하였지만, 주로 <나 혼자 산다>는 김동완, 이국주와 같이 삶의 즐거움을 스스로 찾고 소소한 것에도 기쁨을 즐기는 모습에 초점을 맞추었다. 

하지만 2017년 전현무-박나래-한혜진-이시언-기안84-헨리 등으로 출연진의 세대교체가 이루어지면서 이러한 컨셉에 전환점을 맞이한다. 전현무와 그의 뒤를 이은 박나래는 출연진에게서 ‘부모의 결여’를 발견한다. 기안84가 걸레를 다른 옷들과 함께 세탁기에 돌리거나 이시언이 집안청소를 하는 데 서툰 모습을 보이거나, 출연진들이 가장 기초적인 상식을 틀렸을 때 등 당연하게 배울 법한 것들을 제대로 해내지 못하면 그러한 부분이 웃음 포인트가 된다. 네 얼간이(이시언, 기안84, 헨리, 성훈)가 프로그램의 정체성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이유이기도 하다. 

박나래나 한혜진처럼 본인의 일과 집안일 모두 잘 해내는 프로페셔널한 출연진 역시 부모로부터의 ‘독립’에 성공했다는 의미 이상이 되지 않는다. 박나래가 어머니에게 전화하여 요리법을 물어보거나 한혜진이 고향집에 내려가 어머니의 일을 돕는 모습을 보면 그들이 부모님으로부터 독립한 사회진출자 이상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고정 출연진들은 언제나 ‘도전’ 혹은 ‘변화’를 도모하는데 여기서 가장 두드러지는 출연자가 기안84이다. ‘태어난 김에 사는 사람’이라는 별명이 있을 정도로 자신의 본업 외에는 잘 하는 것이 없다. 제대로 씻지도 못하고, 옷도 집히는 대로 입고, 요리실력도 형편없는 데다 집도 엉망이다. 다른 출연진들은 기안84의 행태에 경악하는 한편 그를 사람답게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이사, 스타일링, 운동 등 미션을 부여하고 수행하게 만들고, 다른 출연진들이 조력자로 등장한다. 이는 그가 누군가의 배우자가 되기 위한 준비라기보다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제대로 된 구실을 위해서인 것 같다.

<미운 우리 새끼>와 <나 혼자 산다>에서 발견되는 가족의 부재는 출연진들이 모이거나 출연진의 친구가 만났을 때 두드러진다. <미운 우리 새끼>에서 혼자 사는 남성들이 모이면 연애와 결혼, 소개팅에 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가장 두드러진 에피소드는 토니안이 문희준의 총각파티를 여는 에피소드이다. 결혼을 앞둔 문희준을 위해 토니안은 집에서 요리를 준비하는데 모두 편의점 음식으로만 준비를 하고 일회용 젓가락으로 상을 차린다. 혼자 사는 노총각의 청승맞음을 떠올리게 되는 부분이다. 문희준은 자신이 결혼을 해서 좋은 장점들을 늘어놓으면서 토니안이 연애에 계속 실패하거나 결혼하지 못하는 이유를 진단한다. 또 다른 에피소드에서 임원희는 정석용과 술을 마시며 사진첩에서 마음에 든 여성의 사진을 삭제하지 못한 미련을 보여준다. 이들의 주된 관심사는 ‘결혼’이고 모든 행동의 결과는 ‘결혼을 하지 못해서’로 귀결된다. 

반면 <나 혼자 산다>는 주기적으로 회원들이 모여 ‘나래의 여름학교’, ‘시언스쿨’, 제주도 단체 MT, 신입생오리엔테이션, 연말파티 등의 특집을 꾸미는데, 이는 부모 없는 집에서 이루어지는 작당모의로 보인다. 이들은 과잠바를 맞춰입거나 농활 체험을 하거나 레크리에이션 등의 활동을 하는데 이는 마치 부모님으로부터 갓 독립한 대학생들 같다. 그 때문에 이들은 결혼을 해야 할 결혼적령기의 출연자로 보이기보다 여전히 부모의 돌봄을 필요로 하는 것처럼 보인다. 

<미운 우리 새끼>는 ‘다시 쓰는 육아일기’로 프로그램의 기획 의도를 표방하지만 그들에게 실제로 필요한 것은 출연진들의 부족함을 메워줄 수 있는 현모양처의 아내를 요청하고, <나 혼자 산다>는 요즘의 트렌드를 좇아 ‘1인 가구’에 초점을 맞추고 있지만 자족적인 1인 가구가 아닌 여전히 혼자 살기에 부족한 개인을 다룸으로써 ‘가족’의 필요성을 역설한다.

4. 남성으로 구성된 이상가족 – <삼시세끼>의 진화

<삼시세끼>는 시즌마다 멤버구성에 약간의 변화를 도모하며 크게 농촌편, 어촌편으로 진행되었다. 삼시세끼는 농촌과 어촌에서의 자급자족을 모토로 한다. 많은 인적 자원이 곧 노동력과 생산량으로 직결되는 농촌과 어촌은 다수의 출연진이 요청된다. 초반에는 이를 게스트로 충당하였다면 후반에는 고정출연진으로 구성에 변화를 이룬다. 

<삼시세끼>는 도회적인 이미지의 이서진이 <꽃보다 할배>에서 의외의 요리실력을 발휘하면서 기획된 프로그램이다. 초창기에는 아날로그적 삶을 표방하며 직접 수확한 재료들로 요리를 하는 컨셉이었다. 애초에 끼니를 제대로 챙겨 먹지도 않고 요리 자체에 대해 회의적인 이서진과 연습생 생활부터 지금까지 자취를 해왔지만 제대로 된 요리를 해보지 않은 옥택연이 고정으로 출연하였다. 이들은 일종의 ‘부모 없는 형제’와 같다. 게스트는 결여된 가족 구성원을 보충하는 방식 – 최화정(이모), 윤여정(어머니), 신구(할아버지), 백일섭(아버지), 이광규(삼촌), 이지호(누나) 등 – 으로 등장한다. 그러나 시즌1에서는 아직까지 유사 가족을 표면적으로 내세우지 않는다. 프로그램 소개글을 보면 ‘한톨의 쌀의 중요성, 식재료의 중요성, 요리를 못하는 출연진들의 좌충우돌’에 초점을 둔다. 

<삼시세끼 – 어촌편>에 들어서면 내러티브의 구성이 전혀 달라진다. 요리를 전혀 하지 못하는 이서진에서 ‘생긴 것과는 다르게’ 수준급 요리실력을 선보이는 차승원으로 주축이 변하였고, 차승원과 동갑인 유해진이 고정으로 출연한다. 이서진과 옥택연 둘 다 요리에 재능이 없다면 차승원은 독보적인 요리실력을 자랑한다. 동갑에 요리에 만능인 사람이 들어왔다는 점은 프로그램 컨셉에 대대적인 변화를 일으킨다. 차승원은 무섭게 생겼지만 똑부러지게 가사일을 하는 차주부로, 유해진은 안식구를 먹여 살리는 가장이 된다. 여기에 불미스러운 일로 자진 하차하게 된 장근석을 대신하여 온 손호준은 차주부를 보조하는 딸이 된다. 

차승원은 부엌에서 ‘주부살림’을 챙기는 아내로서, ‘차줌마’라는 별명을 가진다. 모든 요리를 쉽게, 만능으로 해내는 모습, 여느 실속있는 어머니들의 행동이 그러하듯 빠르고 효율적으로 행동한다. 유해진은 능력 없는 바깥양반인데, 낚시를 통해 생선이나 해산물을 얻어야 요리와 물물교환이 가능하지만 낚시 성공률이 무척 낮기 때문이다. 손호준은 차승원과 유해진의 눈치를 보며 가사 노동의 빈부분을 채워주는 역할을 한다. 자막에서는 손호준을 (그의 성별 때문에) 아들로 지칭하지만 실제로 하는 일들, 예컨대 채소를 손질하거나 어지럽혀진 부엌을 정리하거나 설거지를 하거나, 낚시를 나간 유해진에게 식사를 가져다주는 일 등은 딸에 가깝다. 어촌편에서 이후 등장한 이정우, 윤계상, 추성훈 등의 게스트가 유해진과 함께 낚시를 나가는데, 이들이 아들의 역할에 보다 가깝다. 

<삼시세끼 – 고창편>은 나영석PD가 삼시세끼를 통해 만든 이상가족을 보여준다. 어촌편에 계속 등장하였던 차승원, 유해진, 손호준이 벼농사를 위해 고창으로 온다. 그리고 여기에 남주혁을 고정 출연진으로 뽑는데 이를 통해 완벽한 4인 가족 체제를 완성한다. 이를 뒷받침하듯 여기서는 게스트가 출연하지 않는다. 손호준은 차승원을 보조하는 맏딸로 남주혁은 유해진을 보조하는 막내아들로 나온다. 남주혁은 아버지 유해진의 아재개그를 따라하는 한편, 아버지를 도와 동물들의 집을 만들거나 집에 필요한 갖가지 설비들을 만든다. 마지막에 시장에 가서 동네 사진관에서 가족사진을 촬영하는 모습은 삼시세끼가 이룬 이상가족의 정점이다. <삼시세끼 – 어촌편>부터 구성된 본격적인 유사가족 체제는 <삼시세끼 – 고창편>에서 완성된다. 

이는 차승원과 유해진 스스로 이러한 캐릭터를 창출했다기보다 자막이 훨씬 더 많은 영향을 미쳤다. 차승원과 유해진은 서로를 자기 혹은 선수로 부르지만 자막은 끊임없이 엄마와 아빠, 안사람과 바깥사람, 차주부로 지칭하며 남성으로만 이루어진 이상적인 가족을 그려낸다. 

5. 나가며

텔레비전은 여전히 시청자를 ‘가족’에 위치시키고자 한다. 누가 봐도 부러운 가족부터 끊임없는 갈등 관계 속에 놓이는 가족, 가족 구성원이 부재하더라도 어느 누군가의 어머니, 아버지, 아들, 딸로 표상되며 어떤 식으로든 ‘가족’을 표상한다. 이것의 가장 큰 맹점은 출연진이 가족 내 구성원으로써의 기대 역할을 제대로 해내지 못할 경우에 발생한다. 예컨대 <골목식당>의 1회부터 10회까지는 세정이 보조 MC로 등장하였지만 11회부터는 조보아, 정인선으로 대체되었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백종원은 성공한 사업가이자 절대적인 해결사로서, 그의 솔루션은 논박의 여지가 없다. 그런데 세정은 백종원이 지적하기도 전에 식당의 문제점을 지적한다. 국수집에는 초록색 벽이 어울리지 않다거나 즉석떡볶이 집에 튀김 종류가 부족하다거나 하는 등 백종원이 지적할만한 문제를 앞서 지적하면서 백종원의 역할을 빼앗는다. 백종원은 맹활약하는 세정에게 “(네가 이러면) 나보고 뭘 하라는 거냐”며 웃는다. 백종원의 전지전능함을 강조하기 위해서는 맞는 말만 하는 세정보다, 백종원의 일거수일투족에 천진난만하게 반응하는 조보아가 보조 MC로 더 적합하다. 세정의 하차 이후 투입된 조보아는 이상적인 막내딸 역할을 한다. 그는 백종원의 눈치를 보고, 그의 명령을 수행하고, 골목식당의 사장님을 부모님처럼 대하며 백종원과 사장님 사이의 갈등을 완화해주는 착한 딸 역할을 맡는다. 요컨대 세정이 열심히 프로그램에 참여할수록 프로그램의 기획의도와 멀어지는 결과를 낳았던 것이다. 세정의 조기 하차는 예능 프로그램에 가족 이데올로기가 만연해 있음을 여실히 드러낸다. 

가족 이데올로기의 문제는 정상과 비정상의 범주를 구분하고 주류 가치를 암암리에 전파시킨다는데 있다. 텔레비전의 낡은 비전은 삶의 다양한 가치를 포섭하지 못한 채 여전히 답보 상태에 머무르며 다른 매체로의 이탈을 가속화시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