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가 많은 사람 : 엘리노어 안틴의 역할 놀이


“나는 일반적인 자기 정의의 요인들, “성, 나이, 재능, 시간, 공간”을 나의 선택의 자유를 가로막는 압제적인 한계라고 생각한다.” 1  I consider the usual aids to self-definition –sex, age, talent, time, and space –as tyrannical limitation upon my freedom of choice. Eleanor Antin. 『Who Cares about a Ballerina?』 In Eleanora Antinova Plays, Sun and Moon Press, 1994, p.191.

Huey Copeland, 「Some Ways of Playing Antinova」, 『Multiple Occupancy : Eleanor Antin’s “Selves”』, Wallach Art Gallery, 2013, p. 31, 재인용
– 엘리노어 안틴

엘리노어 안틴(Eleanor Antin: 1935~) 은 작은 국가의 왕이 되었고, 흑인 발레리나가 되었으며, 간호사가 되었고, 러시아 무성영화 감독이 되었다. 본 발표문은 필자가 최근 흥미롭게 알아가고 있는 엘리노어 안틴의 작업을 소개하는 글이다. 1장에서는 엘리노어 안틴이 어떤 정체성을 가지고 어떤 작품활동을 하였는지 소개한다. 2장에서는 안틴이 왕, 발레리나, 간호사, 감독의 역할을 연기하며 어떤 작품을 만들어 냈는지 분석한 후, 마지막 장에서는 안틴의 작업을 향한 비판을 살피고, 그의 작품이 동시대에 어떻게 독해될 수 있을지 고민하며 글을 마친다.


1. 엘리노어 안틴

엘리노어 안틴은 미국으로 이주한 유대인 2세대로, 1935년에 태어났다. 뉴욕 맨해튼에서 자라난 안틴은 공산주의자 어머니와 사회주의자 아버지 사이에서 자라났으며, 유대인 문화를 향유하는 가족들 속에서 미국 사회와 가정 사이의 인식 차이를 경험하게 된다. 철학을 공부하고 배우로 활동하던 안틴은 1960년대 중반, 개념미술을 접하며 본격적인 미술 활동을 시작하게 되었다. 1965년, 그는 첼시에서 화학 상점을 지나가다 발견한 나무상자에 예술가들의 피를 모으며 그의 첫 번째 작품 <시인 상자의 피(Blood of a Poet Box)>(1965-1968)를 발표한다. <시인 상자의 피>는 100명의 시인2시인이라고 명하고 있지만, 실제 혈액의 주인은 시인뿐만 아니라 공연자, 미술작가, 무용수 등의 다양한 예술가로 구성되어 있다.  테이트 모던 아카이브 웹페이지 https://www.tate.org.uk/research/publications/in-focus/blood-poet-box (2019.11.16 접속) 의 혈액을 채취한 샘플을 가득 채운 상자로, 안틴은 이 작품을 통해 정체성의 순수성에 대하여 탐구한다.3Jayne Wark, 「Conceptual Art and Feminism: Martha Rosler, Adrian Piper, Eleanor Antin, and Martha Wilson」, Woman’s Art Inc, 2001. p.46 채취된 혈액은 각각 다른 시인의 DNA를 가지고 있지만 혈액만 보아서는 누구의 피인지 알 수 없으며, 일정한 시간이 지나고 약품처리를 하지 않자 DNA조차 사라져 식별이 불가하게 된다. 

이후 안틴은 센프란시스코로 이주하여 1971년 <8명의 뉴욕 여성 초상화(Portraits of 8 New York Women)>를 발표하며 대표적인 페미니스트 미술가로 발돋움한다. <8명의 뉴욕 여성 초상화>는 각 여성의 얼굴이나 신체를 묘사하지 않고, 각자의 성격과 직업적 역할을 나타내는 물건들로 구성하여 8종류의 특성과 정체성을 지닌 물건들의 집합으로 제시된다. 당시 페미니스트 작가들은 ‘진정한 여성성’, ‘진정한 남성성’으로 분리된 개념을 지우고자 하였으며, 정체성을 탐구할 때 반복적인 재연보다는 비판적인 암시를 하는 것이 더 정교한 표현이라고 논의하였다.4 Jayne Wark, 위의 논문, p.47. 이와 같이 1970년대의 페미니스트 작가들과 안틴은 실재를 그대로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을 기반으로 한 허구를 생산하여 더욱 실효성 있는 질서의 전복을 꾀하였다. 1972년, 안틴은 <조각하기: 전통적 조각(Carving : A Traditional Sculpture)>을 통해 이상화되어 있고 아름다움으로 소비되는 여성의 신체 이미지을 공격한다. <조각하기: 전통적 조각>은 37일 동안 섭취를 줄이며 자신의 몸을 사진으로 기록한 작품이다. 그의 체중 변화는 사진에서는 거의 인식할 수 없을 만큼 미세하였지만, 안틴은 마치 그의 행위가 전통적인 그리스 조각에서 미적으로 완벽할 때까지 대리석을 깎아내듯 신체의 작은 층을 벗겨내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안틴은 <조각하기: 전통적 조각>을 통해 대중 잡지에서 소비하는 여성의 신체, 그리고 전통 조각이 지향하는 여성의 모습에 대해 비판하였으며, 이러한 접근은 여성의 스트레오타입화 된 이미지에 침투하여 관객들로 하여금 고착화된 감각의 질서를 마주하게 만들고 의문을 품도록 이끈다. 

같은 시기, 안틴은 그가 “자아들(Selves)”라고 부르는 가상의 인물을 만들어내기 시작한다. 그가 만들어낸 인물은 왕과 간호사, 발레리나, 흑인 배우, 감독으로, 각각의 인물은 서로 다른 환경에서 그들이 속한 사회의 내면을 들춰낸다. 안틴은 이들의 모습을 사진, 영상, 퍼포먼스, 텍스트 등으로 기록하였다. 뒷장에서 더 자세히 밝히겠지만 안틴의 “자아들” 역할 놀이가 만들어진 시기에, 미국 내 페미니즘 미술에서는 퍼포머가 변장하거나 사진을 조작하여 인종과 성별로 분류되는 정체성 체계를 해체하고 전체성의 수행적 성격을 강조하는 움직임이 일어나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안틴은 자신과 다른 정체성을 지닌 인물을 만들어내고, 이들이 사회에서 어떻게 작동하고 있는지, 혹은 어떻게 만들어진 질서에 균열을 내는지 보여준다. 안틴의 역할놀이는 1991년 가상의 러시아 무성영화 감독 예브게니 안티노브(Yevgeny Antinov)로 마무리 되었고, 그는 이후 영화 <빌나의 밤(Vilna Nights)>(1993)과 <미네타 노선(Minetta Lane)>(1995)을 제작하였으며, 2000년대로 들어선 후, 로마의 역사와 신화를 모티브로 삼은 사진 작업 <폼페이의 마지막 날(The Last Days of Pompeii)>(2002)과와 <로마의 알레고리(Roman Allegories)>(2005)를 발표하였다. 또한 그는 2012년에 그의 자아들 중 하나였던 발레리나 엘레노라 안티노바(Eleanora Antinova)를 다시 무대에 올리며 동시대의 새로운 해석을 작품에 포함시켰고, 2017년도에는 80대의 신체로 1972년도 작업이었던 <조각하기: 전통적 조각>을 다시 재현하며 신체 변화에 대한 새로운 탐구를 시도하였다.


2. 엘리노어 안틴의 역할놀이

나는 발레리나, 왕, 간호사, 흑인 영화배우와 같은 네 명의 서로 다른 존엄성을 지휘하는 것이 내 영혼을 상상하는 데 유용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 네 명의 위대한 인물로 나 자신을 나누며 나는 내 삶과 성격, 그리고 세계에서의 나의 자리에 대해 배울 수 있었다.5I have found it useful to imagine my soul as presided over by four dignities a Ballerina, a King, a Nurse and a Black Movie Star. By dividing myself among these four great personas I have learned a lot about my life and character and my situation in the world. – Eleanor Antin.

Josephine Withers, 「Eleanor Antin: Allegory of the Soul」, Feminist Studies, Vol. 12, No. 1, 1986, p.117.  
  -엘리노어 안틴 

엘리노어 안틴은 약 20년간 역할 놀이를 하며 여러 인물로 자신의 작품을 만들고, 그 속에 등장했다. 안틴의 역할 놀이는 실재에 개입한 허구로, 당시 페미니스트 작가들은 안틴과 같이 새로운 자아를 만들고 그를 연기하는 방식으로 활동하였다. 대표적으로는 애드리안 파이퍼(Adrian Piper: 1948~), 린 허쉬만 리슨(Lynn Hershman-Leeson: 1941~)이 있으며, 이들은 작품을 통해 불안정한 정체성, 정체성에 따른 차별과 혐오의 실체를 말하고자 하였다. 이 시기 이와 같은 역할 놀이 작품이 등장하게 된 이유는 1970년대 미국에서는 신문화운동으로 흑인 인권 운동, 페미니즘 운동, 소수자 운동, 환경 운동 등이 등장하기 시작하였고, 그에 따라 계급 정치가 아닌 정체성 정치로 정치의 맥락이 변화하게 되었다. 그 결과, 정체성에 대한 고민이 생겨났으며 안틴와 동료 작가들도 다중 정체성을 가시화하는 역할 놀이를 작품에 활용하게 되었을 것이라 추측된다. 

본 글에서는 집중하지 않지만 안틴의 역할놀이는 랑시에르의 허구 논의를 떠올리게 만든다. 본 논의가 앞으로 진행될 안틴의 작업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하여 짧게 설명하고자 한다. 랑시에르는 허구와 허위를 구분하며, 허구는 단순한 거짓말이 아니라 실재와 관계하기 때문에 허위보다 강력한 발명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6 자크 랑시에르, 『감성의 분할』, 오윤성 역, 도서출판 b, 2008,, p.52. 또한 허구적 배치는 ‘일어날 수도 있는’ 스토리의 서술로써 사실과의 유사성, 필연성에 얽매이지 않아 감성의 지도를 재형성하는 역할을 한다.7 자크 랑시에르, 위의 책, p.54. 이때 말하는 ‘일어날 수도 있는’ 스토리, 즉 허구적 스토리는 경험에 의존하는 역사적 서술, 즉 ‘일어난’과 대조되며, 경험적으로 서술된 역사가들의 스토리 보다 중요하다. 랑시에르는 실재는 사유되기 위하여 허구화 되어야 한다고 말하며, 실재를 그대로 반복하는 것보다 허구와 논리 사이를 불명확하게 하여 질문을 생산하는 것이 더 필요하다고 주장한다.8 자크 랑시에르, 위의 책, pp.52-53. 안틴의 역할 놀이는 랑시에르가 말하듯 실재에 기반한 허구의 인물의 창작이며, 그는 이러한 역할을 통해 만들어진 질서를 해체하고 새로운 감각의 재배치를 실현하였다. 이번 글에서는 랑시에르 논의와의 안틴의 작업 사이의 접점을 직접적으로 연결시키지 않지만, 안틴의 역할 놀이 작업을 설명하며 자연스럽게 두 사람의 의도가 교차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허구가 만들어낸 질서의 흐트러트림을 기억하며 아래 글로 이어지는 안틴의 작업을 살펴보도록 하겠다.

2-1. 왕

1972년 안틴은 솔라나 해변의 왕(The King of Solana Beach)이 된다. 안틴은 왕이 되는 과정을 <왕(The King)>(1972) 영상 작업으로 기록한다. 52분 동안 특별한 변화 없이 지루하게 화장하는 모습을 담은 이 작품은 1971년도 작품 <재현적 회화(Representational Painting)>를 떠오르게 한다. 두 작품 모두에서 안틴은 거울을 바라보며 천천히 화장을 한다. <재현적 회화>가 완성된 모습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 반복된 행위로서의 화장을 보여주었다면 <왕>은 화장을 통해 남성, 왕의 모습을 만들어낸다. 하지만 그가 만들어낸 왕은 위엄있는 왕의 모습이 아니었다. 그는 야망은 있지만 다른 유럽의 지도자들처럼 키가 작고 왜소한 왕의 모습을 만들었는데, 그가 오마주한 왕의 모습은 안토니 반다이크(Anthony Van Duck: 1599–1641)의 <찰리 1세(Charles I)>초상화 속 인물이다. 안틴은 찰리 1세가 자신과 비슷하게 희망이 없는 낭만적인 사람이며 정치적으로 패배한 처지라고 설명한다. 이때 안틴은 자신이 투표한 누구도 당선되지 않았고, 전쟁을 멈출 수도 없었으며, 캄보디아를 폭격하는 것도 막을 수 없었다고 자조적으로 말한다. 그리고 그는 베트남 전쟁이라는 비극적인 정부의 결정에 절망한 해변의 왕은 어떤 일을 할 수 있을까 질문한다.9 Glenn Phillips, “Eleanor Antin,” in California Video: Artists and Histories (Los Angeles: Getty Research Institute and the J. Paul Getty Museum, 2008), p. 24. 

1972년부터 1982년까지 10년간 안틴은 <블러프 전투(The Battle of the Bluffs)>를 공연하는데, 여기서 안틴은 절망적인 현실에서 작은 국가의 왕의 고군분투를 그린다. 안틴이 연기한 왕은 솔라나 비치가 작은 왕국이지만 어떤 왕국도 왕이 편하게 걸을 수 있는 것보다 더 커지면 안된다고 말하며, 솔라나 해변 왕국이 딱 자신의 다리 길이와 알맞다고 소개한다.10 Solana Beach is a small kingdom but a natural kingdom for no kingdom should be should extend any further than its king can comfortably walk on any given day. My kingdom is the right size for my short legs. -Eleanor Antin, 「The King of Solana Beach」 (1974-1975). Alexis Clements, 「The Many Faces of Eleanor Antin」, Hyperallergic, 2013 재인용 https://hyperallergic.com/95936/the-many-faces-of-eleanor-antin/ (2019.11.17 접속) 이는 솔라나 해변에서 개발의 움직임이 나타났고, 그에 따라 남부 캘리포니아의 자연과 야생, 특히 토레이 파인 수종이 훼손된 위기에 처하자 이를 막기 위한 왕으로서의 주장이자 입장이다. 왕은 극 중에서 수석 개발자와 펜싱 경기를 벌이고 이겨 개발을 중단시키지만 곧 배신 당한다. 왕의 지역 개발을 막으려는 시도는 실패하였지만, 안틴은 허구의 개념을 사용하여 미국에서 나타나는 자본주의, 계층 구조, 환경 파괴와 같은 치안의 질서를 붕괴하고자 시도하였다. 또한 안틴이 설정한 솔라나 해변의 왕은 기존의 왕이 지닌 이미지를 전복시킨다. 왕은 히치 하이킹을 하거나, 은행에 줄을 서거나 식료품점에서 쇼핑을 하는 등의 소위 일반 서민들의 행동이라 불리는 행위를 하며 왕을 둘러싼 스테레오 타입을 허문다. 이렇듯 안틴은 가상 인물, 왕을 현실 속에 삽입시켜 자엽스럽게 이어지는 자본주의의 통치 구조의 문제를 고발하고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권력의 이미지를 해체한다.

2-2. 발레리나

안틴의 자아들 중 가장 유명한 인물은 엘레노라 안티노바(1973-1989)이다. 안틴은 1973년부터 1989년까지 약 16년간 지속적으로 흑인 발레리나 안티노바가 되었다. 처음 엘레노아 안티노바가 등장한 것은 1973년 <두 명의 엘레노라(Two Eleanors)>이다. <Two Eleanors>는 거울을 바라보고 있는 안티노바의 모습의 사진인데, 이 작품은 같은 년도 작품인 <조각하기: 전통적 조각>과 공명한다. 안틴은 이 작품을 설명하며 “발레리나는 항상 거울에서 확증을 추구하고 있다”고 말한다. 이는 거울을 바라보며 만들어진 규정에 몸을 맞춰야하는 발레리나의 억압을 의미한다. 안티노바는 곧 <법에 얽매이기(Caught in the Act)>에서 불안정한 발레리나가 된다. <법에 얽매이기>는 사진과 영상으로 구성된 작품으로, 사진에서는 토슈즈를 신은 채 발레 포즈를 완벽하게 구사하고 있는 안티노바의 모습을 볼 수 있다. 하지만 함께 제시되는 영상에서는 안티노바가 막대기 끝을 붙잡고 겨우 자세를 만든 후, 막대기를 놓은 짧은 순간 카메라가 그 장면을 포착하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안티노바는 이미지로 관객을 속인다. 그리고 영상을 통해 그 이미지는 만들어진 이미지이며, 완벽한 몸과 자세는 허상에 불가하다는 것을 말한다. 

이후 안티노바는 영상작업 <발레리나와 부랑자(The Ballerina and the Bum)>(1973)과 에서 퍼포먼스 영상작업 <작은 매치걸의 발레(The Little Matchgirl Ballet)>(1975)에서 <법에 얽애미기>속 막대기를 벗어나 제대로 된 발레를 접하기 위해 떠난다. 안틴은 뉴욕의 조지 벨런친11 George Balanchine, 조지 밸런친(1904-83): 소련 태생인 미국의 안무가 댄스 컴퍼니에 들어가기 위해 부랑자와 함께 길을 떠나고, 피카소가 디자인한 무대 배경에서 스트라빈스키의 음악에 맞춰 춤춘다. 이때의 춤은 당시 뉴욕에서 활동했던 이본느 레이너(Yvonne Rainer: 1934~)의 작품에서 영향받았다고 추정된다. 당시 레이너는 전통 발레에 속하지 못하는 무용수들- 살이 쪘거나, 전형적인 미인상에 부합하지 않거나, 드랙을 하는 무용수들의 공연을 선보였고, 안틴은 뉴욕에 거주하는 동안 레이너의 작품을 보고 영향을 받았을 것이라고 추측된다.12 Emily Liebert, 「A King, A Ballerina, and a Nurse」, 『Multiple Occupancy : Eleanor Antin’s “Selves”』, Wallach Art Gallery, 2013, pp, 15-16. 안틴은 백인 그리고 여성의 춤이라고 불리는 발레의 특성에 주목한다. 이러한 안틴의 생각은 1979년 키친센터(The Kitche, New York)에서 열린 퍼포먼스를 통해 더욱 구체화되었다. 사진 혹은 영상으로만 존재하던 안티노바는 처음 실제 인물로 등장하게 되는데, 여기서 안티노바는 1920년대 러시아의 대표적인 발레단의 단원으로 활동하였으며, 댜길레프(Sergei Diaghilev)의 발레 루스(Ballet Russes)에서 춤을 춘 발레리나가 되고, 안틴은 그에 대한 영상자료가 최근 발견되었다고 밝힌다. 그리고 그 자료를 <가상의 다큐멘터리(Documentary Fiction)>라 부르며 그의 무용을 재현한 공연을 선보였다.13 진휘연, 「엘레노아 안틴의 <엘레노라 안티노바>연구 : 아바타의 확장과 정체성의 미학」. 조형미디어학 vol.20 No.4, 2017, p.280 또한, 안틴은 안티노바의 자서전인 <댜길레프와의 삶에 대한 회고 1919-1929 (Recollections of my life with Diaghilev; 1919-1929)>(1979)를 제작하며 안티노바의 삶을 더욱 구체화시킨다. 그는 흑인 발레리나가 역사에서 사려지게 된 경위를 밝히며, 그가 활동했을 당시에 흑인 발레리나에게 주어진 제약에 대하여 이야기 한다. 안티노바는 댜길레브 발레단에서 클레오파트라나 포카혼타스와 같은 이국적인 정체성을 지닌 인물만이 자신에게 주어졌다고 밝힌다. 이러한 설정은 안틴의 경험에서 비롯된 것으로 안틴의 어머니와 안틴은 모두 배우를 꿈꾸었지만 배역의 한계로 배우생활을 길게 이어갈 수 없었다. 특히 그의 어머니는 폴란드의 이디시어 무대에서 연기하였지만 미국에서 이디시어는 저급한 문화로 취급되어 그의 연기 역시 평가 절하되었었다. 안틴이 생각하기에 이러한 피부색, 문화권에 따른 배역 차별은 여전히 존재하고 있으며 안틴은 안티노바를 통해 시간이 흘렀음에도 여전한 사회적 차별을 말하고자 하였다. 실제로 백인 무용수에 비하여 흑인 무용수에겐 좁은 범위의 배역만이 주어졌고, 이때의 배역은 더욱 이국성을 강조하는 방식으로 꾸며졌다. 안틴은 포카혼타스와 같은 캐릭터 역시 백인의 원주민 여성에 대한 환상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하며 역사와 미디어의 기록이 주류에 선호에 의하여 만들어지는 것을 지적한다.14 Cherise Smith, 『Enacting Others』, Duke University Press, 2011, p.88. 마리 앙투아네트를 연기하는 <혁명 전(Before the Revolution)>은 흑인 발레리나가 지닌 한계를 전복시킨 성격의 공연이다. <혁명 전>에는 유대인인 안틴이 흑인 안티노바로 분장한 후, 다시 백인인 앙투아네트를 표현하기 위해 백인으로 분장한 모습이 등장한다. 이 아이러니한 모습은 20세기 초반 미디어 속 흑인을 연출하기 위해 백인이 흑인으로 분장했던 모습을 떠오르게 한다. 안틴은 백인이 만든 역사 속에 흑인이 들어와서는 안 되었던 백인 중심주의의 문화를 전복시켜 유색인종을 향한 차별을 드러낸다. 

1980년도, 안틴은 뉴욕에서 3주간 안티노바가 되었다. 이때 그는 매일 안티노바로 분장하고 그의 모습으로 활동하였다. 피부를 검게 칠하고 러시아 음식을 먹고, 흑인의 말투를 흉내내고, 복고풍으로 꾸미는 등 자신이 그린 안티노바의 삶을 살았다.15 Cherise Smith, 앞의 책, p.110. 이때 안틴은 자신의 일상적인 업무, 대학 강의, 전시회 및 리셉션 참석 등의 업무도 동시에 수행하며 발음, 습관성 행동 등에서 안티노바가 아닌 안틴의 모습이 드러날까봐 조심하였다고 말한다. 하지만 동시에 그는 퍼포먼스를 하는 동안 자신의 뉴욕 말투를 그대로 사용하는 등 평상시의 모습으로도 생활하는 이중적인 모습을 보였다고 밝히고 있어 안틴의 애매한 태도를 확인할 수 있다. 안틴은 이 3주의 퍼포먼스를 『안티노바 되기(Being Antinava)』에 기록하였는데, 마치 일기를 쓰듯 안티노바로서의 일상을 기록한다. 이 기록 안에는 허구의 정체성으로 살아가기 위한 방법과 과정 그리고 복잡성이 포함되어 있는데, 기록 역시 실재와 허구 사이에 있다.16 위의 책, pp.81-82. 안틴은 이처럼 일상과 퍼포먼스 사이에서, 허구와 실재의 사이에서 다양한 실험을 지속하는데, 이는 안틴 자신의 정체성과 허구의 정체성 사이의 중간 공간을 찾는 과정이며, 이러한 행위는 사회적으로 규정된 정체성의 가변성을 설명한다. 사회적으로 운명지어진 듯한 정체성에 얽매이지 않으며, 규정된 질서에 복종하지 않는 자세로 만들어진 안틴의 작업은 랑시에르가 말하듯, 사회적 의미화를 무의미하게 만들고 소외된 소수의 존재를 목소리를 가진 실재로 불러온다. 

2-3. 간호사

안틴은 자신에게 자아가 없다고 생각하였고, 이러한 안틴의 특성은 다른 사람의 모습을 빌려 새로운 정체성의 옷을 입기 수월하게 하였다. 또한 안틴은 롤-플레이가 자신이 생각하는 정치적, 사회적 문제를 다루는 데에 유용한 방법이라고 생각하여 지속적으로 다른 이의 정체성을 자신의 신체에 투영시킨다.17 Sollins Susan, Solins Marybeth. 「Eleanor Antin」, 『Art:21 : art in the twenty-first century. [2]』, New York, N.Y. : Abrams : Art21, 2003, p.117.  1976년과 1977년, 그는 두 명의 간호사가 된다. 안틴은 간호사가 희생양, 양육자, 하인, 성적인 대상, 판타지의 인물로 그려진다는 것에 주목하여, 간호사를 둘러싼 고정관념을 탐구하기 시작한다.18 Emily Liebert, 「Roles Recast: Eleanor Antin and the 1970s」, COLUMBIA UNIVERSITY, 2013, p.132. 그는 1976년 <간호사의 모험(The Adventures of a Nurse)>에서 종이인형 형태로 작은 간호사 엘리노어를 만들고, 여성 간호사을 향한 편견인 수동적이고 수용적이며 정적인 성격을 드러낸다. 그가 만든 종이 인형 간호사는 간호사의 일은 하고 친구들과 시간을 보내지만 각 장면이 끝날 때마다 그는 죽어가는 시인, 자전거 타는 사람, 의사, 상원 의원 등 그를 찾는 구혼자와 성행위를 한다. 1970년 안틴은 <간호사와 납치범(The Nurse and the Hijackers)>를 제작한다. <간호사와 납치범>은 프랑스 생트로페로 가는 길에 납치된 비행기에서 벌어진 일화를 담은 종이인형극이다. 비행기 안에는 전형적인 미국인의 모습을 한 자서전을 쓰는 영화배우, 스튜어디스, 스포츠기자가 타고 있었고, 납치범들은 4명의 급진적인 환경주의자들로 그들 중 모튼19 모튼이라는 이름은 예술가 Ree Morton의 이름을 딴 것으로, 작품 제작 직전 생을 마감한 모튼을 기리는 의미였을 것이라 추정된다.이라는 이름을 딴 납치범은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당신을 포함한 우리는 소수의 사람들의 풍요를 주고 단기적인 관심을 받기 위해 만들어진 제국주의의 기술에 대한 인질이다. 이러한 기술은 진보적인 기술이 아니다. 이렇게 지구를 파괴하는 기술은 퇴보적인 기술이다”20 Emily Liebert, 앞의 논문, pp. 135-136.

모튼을 비롯한 납치범들은 비행기를 납치한 후 이를 통해 언론에 자신들의 정치적 의제를 전달하고자 하는 목적을 가지고 있었다. 모튼은 비행기를 납치한 후 텔레비전 방송에 메세지를 전달하고자 하였지만 그가 도달할 수 있는 곳은 비행 통제실 뿐이었고, 비행 통제부는 그의 메세지를 제대로 알아들을 수 없었다. 또한 납치범들은 비행기를 납치하여 OPEC 국가로 향하려 하지만 해당 나라의 지도자들은 미국에게 대체 에너지를 만들라는 설득을 하지 못하고 그들의 착륙 계획 역시 실패하게 된다. 결국 이 비행기는 이집트에 내리게 되고, 이스라엘 군인들은 납치범을 죽이고 승객 몇몇을 죽이게 된다. 간호사 엘리노어는 납치당한 비행기에서 그가 가지고 있는 가위와 재봉키트로 부상당한 사람의 생명을 구하며 이 관경을 지켜보게 된다. 그리고 그는 비로소 간호사의 이미지에 부합하는 로맨스의 대상의 역할에서 벗어나게 된다. 또한 이를 통해 안틴은 미국인이 지닌 중동, 납치, 테러에 대한 고정관념을 들여다보게 하고, 환경주의자로 구성된 납치범이 지닌 목적에 비하여 그들의 전략과 결과의 허무함을 보여준다. 안틴은 다른 역할과는 다르게 간호사를 연기할 때만 종이인형을 사용하는데, 안틴은 종이인형이라는 가변적이며 여성아동들에게 익숙한 재료를 통해 소녀들에게 어디서나 이야기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하고자 하였다고 밝힌다.21 Draft of press release for 「The Nurse and the Hijackers」, Eleanor Antin papers, 1953–2010, box 18, folder 7. Emily Liebert, 앞의 논문, p.136 재인용.  

안틴의 작은 간호사 엘리노어 종이인형 시리즈는 관객에게 이야기와의 거리감을 제공한다. 하지만 이후에 제작된 간호사 엘리노아 나이팅게일(Eleanor Nightingglae)은 실제화된 가상으로 제작되어 열정적이지 않은 관객은 그의 이야기를 사실로 받아드리게 만든다. 안틴이 주목하는 간호사에 대한 사회적 편견은 엘리노어 나이팅게일의 작품 <자비의 천사: 나이팅게일 가족앨범(The Angel of Mercy: The Nightingale Family Album)>과 <자비의 천사: 크림 반도에서의 나의 임무 여정(The Angel of Mercy: My Tour of Duty in The Crimea)>, 그리고 종이인형 연극 <자비의 천사(The Angel of Mercy)>에서도 드러난다. 두 사진 시리즈는 마치 19세기의 사진처럼 세피아 톤의 사진으로 제작되었다. 이에 대하여 안틴은 예술에서의 현실을 암시하는 것은 사실 현실이 아니며, 오히려 약간의 불균형, 혹은 예상치 못한 것이 진실의 모습을 줄 것이라 밝힌다.22 Carlene Meeker, 「Eleanor Antin」, ENCYCLOPEDIA https://jwa.org/encyclopedia/article/antin-eleanor (2020.01.26. 접속) 그의 엘리노어 나이팅게일 사진 시리즈에는 마치 실제 플로렌스 나이팅게일(Florence Nightingale; 1820~1910)의 일생을 연상시키는 사진 시리즈이다. 사진에는 영국의 빅토리아 시대의 상류층을 연상시키는 모습이 담겨있는데, 이때 나이팅게일은 가족 구성원들과 조금 떨어져 거리를 두고 있다. 가령 모여있는 사람들에게서 조금 떨어져 위치하고 있거나, 활동적인 사람들을 등돌리고 있거나,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는 가족들에게 간호사가 되는 소명이 자신에게 왔음을 밝히며 가족의 반대를 무릎쓰고 간호학교로 떠나게 된다. 간호학교에서 훈련받은 나이팅게일은 극 중 1853년에 그녀의 고향인 영국에서 병원 감독관이 되는데, 이 해는 크림전쟁이 발발한 해였다.23 크림전쟁은 1853년부터 1856년에 걸쳐 일어난 전쟁으로, 러시아와 오스만투르크, 영국, 프랑스, 사르데냐 연합군이 크림반도를 둘러싸고 싸운 전쟁이다. 그리고 이 전쟁은 플로렌스 나이팅게일이 야전병원에서 활동하여 간호사의 발전을 가져왔으며, 여성들의 전쟁 참여의 시초가 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자비의 천사: 크림 반도에서의 나의 임무 여정>은 다른 모습의 나이팅게일을 보여준다. 엘레노어 나이팅게일은 군인과 체스 게임에 몰두하는 등의 의외의 모습을 선보이는데, 이 시리즈의 나이팅게일 이야기는 연극 <자비의 천사>에서 확인할 수 있다. 작은 간호사 엘리노어와 같이 종이인형 연극인 <자비의 천사>는 실제 사람에 버금가는 크기의 종이인형을 만들고, 안틴은 그들 사이에 실제로 등장하여 나이팅게일을 연기한다. 안틴은 이 연극을 통해 다수의 여성으로 이루어진 간호사의 역할을 무시하였을 때 치명적인 결과로 도달할 수 있음을 경고한다. 엘리노어 나이팅게일은 군인들을 치료하여 다시 내보내는데, 이 군인들은 밖에 나가 더 많은 사람을 부상입히거나 죽인다는 것을 알게 된다. 더 많은 사람을 치료할수록 나이팅게일 앞에는 한 명이었던 시체가 두 명이 되고 다섯 명이 되는 등 계속하여 증가하기만 한다. 이에 대하여 문제의식을 느낀 나이팅게일은 치료를 중단하며 자신을 치료자가 아니라 이중 살인자라고 평한다. 이는 1975년까지 이어진 베트남 전쟁에 대한 안틴의 입장을 담고 있다. 베트남 전쟁이 한창일 때 미국은 언론을 통제하였고, 그에 따라 미국인들은 이중 살인자가 되었다. 안틴은 치료하면 할수록 부상자가 늘어나는 실재에 기반한 아이러니를 보여주어, 당시의 반전 운동과 비폭력 운동과도 접점을 만들고 나이팅게일 스토리를 통해 여성의 직군처럼 여겨졌던 간호사, 즉 큰 변화를 일으키지 못하고 전쟁과는 거리가 멀다고 여겨지는 간호사 역할에 전복을 꾀하고자 하였다.

2-4. 감독

1991년 안틴은 마지막 역할인 가상의 러시아 무성영화 감독 예브게니 안티노브(Yevgeny Antinov)를 만든다. 정확하게는 안티노브가 감독한 영화 <세계가 없는 사람(The man Without the World)>를 발표한다. 영화는 한 박물관에서 잃어버린 걸작을 찾는 프로젝트를 통해 재발견된 20세기 초의 작품이라는 설정으로 이루어진다. 안티노브 역시 20세기 초에 활동한 러시아 감독으로 자국에서 도망쳐 미국으로 왔지만, 영화 속에 정치적 입장을 넣어야 한다고 주장하여 그를 도우려던 후원자들이 모두 후원을 철회하게 된 서사를 가지고 있다. 이렇게 <세계가 없는 사람>과 안티노브의 이야기로 시작한 영화는 20세기 초 폴란드를 배경으로 시골 소녀 루켈레(Rukheleh)와 유대인 시인 제뷔(Zevi)그리고 그의 동생 수렐레(Sooreleh)24 Rukheleh는 아랍어로 ‘그를 떠나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Sooreleh는 소말리아어로 ‘이전’을 뜻한다. 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며 이들을 중심으로 집시 공연 그룹, 아나키스트 동료, 마술사, 정육점 남자, 광신도 등이 함께 극을 이끈다. 영화의 스토리는 크게 두 갈래로 나뉜다. 첫 번째는 루켈레와 제뷔의 사랑으로, 시골의 아름다운 여성이었던 루켈레는 제뷔와 사랑하지만 부모의 뜻으로 비유대인 정육점 남성과 결혼을 하게 될 위기에 처한다. 하지만 제뷔의 아이를 가지게 된 루켈레는 그의 부모를 설득해 제뷔와의 결혼식을 치르게 된다. 이 과정에서 루켈레는 유대인과의 결혼은 절대 안 된다는 아버지에게 그와 결혼하지 않으면 죽을 것이라고 협박한 후, 결혼 승낙을 받아내게 되는데 승낙을 받은 후 웃어보이는 루켈레의 모습에서 그가 자살하려 했던 것은 결혼 승낙을 위한 전략이었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결혼식 날 하객으로 찾아온 다른 남성과 춤을 자유롭게 추는 루켈레를 어머니가 말리는 장면, 결혼 후 신부을 삭발시키는 장면에서는 여성을 억압하였던 사회적 인식을 읽을 수 있다. 

두 번째 스토리는 제뷔의 동생 수렐레의 이야기로, 수렐레는 남성들에게 강간을 당한 후, 정신적인 장애가 오고 말을 더이상 하지 않게 된다. 제뷔는 집시 공연 그룹이 마을에 도착한 뒤, 예술가 모임에 빠져 자신의 아이를 가진 루켈레와 수렐레를 등한시 하게 되고 수렐레는 결국 다리 아래에서 방랑자 생활을 하게 된다. 수렐레를 찾아가 돌본 것은 루켈레였고, 루켈레는 어느 날 수렐레에게 자신이 곧 정육점 남성과 결혼을 하게 되었는데, 사실 자신의 뱃속엔 제뷔의 아이가 있다고 고백한다. 하지만 그들 주변엔 숨어있던 광신도 남성들이 있었고, 이들은 수렐레를 마녀로 몰아 납치하려 한다. 루켈레는 그들을 막으려 하였지만 광신도들은 너의 부끄러움을 알고 있다고 말하며, 루켈레를 저지한다. 광신도에게 붙잡힌 수렐레는 수차례 반격을 하며 그들의 의식에 순응하지 않지만 다수의 남성들로 구성된 광신도들 사이에서 결국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세계가 없는 사람들>은 폴란드의 작은 마을 공동체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데, 이는 안틴의 부모의 영향이 있었을 것이라 추정된다. 안틴의 부모는 폴란드의 작은 마을에서 이민을 온 유대인이었고, 그들은 폴란드 작은 마을에서 즐겼던 이디시 문화를 중요하게 여기지만 그들이 새롭게 정착한 미국에서는 이디시 문화를 저속한 문화로 폄하되었다. 이디시 문화에 대한 안틴의 생각은 제뷔가 자신의 시에 대해 말하는 장면에서 드러나는데, 제뷔는 현대화된 이디시 관객은 어디에도 없다며, 자신은 이디시 문화를 향유하며 시를 쓰기 때문에 세상이 없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또한 극 중 배경이 되는 폴란드는 유대인의 비율이 높은 나라로, 독일을 피해 온 유대인들이 많이 자리잡은 나라였다. 하지만 동시에 많은 유대인들이 학살당한 아우슈피츠가 있는 곳이기도 하며 안전하다고 생각했던 폴란드 역시 독일의 침공을 당해 죽음의 땅이 되었던 적이 있기에 유대인들에게 폴란드는 안전하고도 위험한 양가적인 국가이다. 또한 폴란드 내에서도 유대인과 비유대인 사이의 차별은 여전하였는데, 안틴은 <세계가 없는 사람들>의 중간중간 유대인이 지닌 불안과 공포를 삽입한다. 제뷔의 어머니는 폴란드가 유대인을 억압하는 법을 통과시켰다고 말하며, 유대인의 주변엔 언제나 가스실이 있으며 유대인은 온 사방에서 죽어갈 것이라고 말한다. 제뷔는 자신의 어머니의 산소에서 유대인의 아버지와 결혼하여 유대인 자식을 낳고 유대인으로 살아온 어머니의 삶을 애도한다. 또한 모두가 형제라고 말하는 아나키스트 동료에게 어떤 노인은 다가와 카인과 아벨도 형제였으며 요즘은 개가 개를 잡아먹는 세상이라고 자조한다. 또한 유대인은 빵집을 가질 수 없다고 유대인 제빵사를 내쫒거나 유대인의 역사는 사라진다고 말하는 대사에서 안틴이 작품을 통해 보여주고자 하였던 유대인 차별의 현실을 읽을 수 있다. 또한 영화의 마지막엔 제뷔가 그의 동료를 죽이고 자신을 죽이려 하는 비유대인을 칼로 찔러 죽이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때 제뷔는 “당신의 꿈을 이루어졌다. 이스라엘이여. 마침내 유대인은 살인자가 될 수 있었다”25 Your dream has come true, Yisroel… finally a Jew can become a murderer.고 말한다. 이 장면에선 유대인의 말로는 정해져 있음을 인정하고야 마는 제뷔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제뷔는 이렇게 살인을 저지른 후, 유대인들이 꿈꾸는 폴란드의 유토피아 바르샤바(Warsaw)26 제2차 세계 대전 이전 바르샤바는 유럽에서 가장 큰 유대인 문화 중심지였다. 하지만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나치는 바르샤바를 점령하게 되었고, 그곳에 수용소를 설치한다. 에 루켈레와 함께 가고자하지만, 집시 공연단의 점술사는 바르샤바 역시 그들의 마을과 다르지 않으며 그곳에서도 가난과 차별은 여전할 것이라는 현실을 말한다. 그 이야기를 들은 제뷔는 결국 루켈레를 버린 채 점술사를 따라 떠난다. 

폴란드에서 일어난 유대인을 향한 차별과 폭력을 그린 이 영화에는 유대인이라는 인종에 의한 차별 뿐만이 아니라 여성,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 역시 드러난다. 강간당한 소렐레가 쉽게 버려지는 상황이나, 결혼한 루켈레를 억압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나타나며, 루켈레의 결혼 의식 중에 키스를 나누는 동성 커플을 떼어 놓는 장면은 동성애에 대한 혐오가 존재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유대인, 여성, 성소수자에 대한 불평등을 말하고 있는 <세계가 없는 사람>은 안틴의 역할 놀이가 직접적으로 드러난 작품은 아니다. 그는 안티노브라는 새로운 인물을 창작하여 그가 20세기 초에 제작한 영화라는 컨셉으로 작품을 제작하였고, 평범한 관객은 안틴의 작품을 보며 실제로 20세기 초에 러시아 무성영화 감독 안티노브가 제작한 영화라고 생각할 것이다. 이렇듯 이 영화는 허구로 시작되었지만 실제 역사적 맥락 속에서 억제된 유대인의 문화적 원형을 되살리고 당시 폴란드에서 일어나는 강간 사건, 소수자를 억압하는 권력, 대학살 등의 사회적 이슈를 드러내며 실재에 개입한다. 안틴 역시 영화는 실재와 허구 이미지 사이의 관계에 대하여 수많은 의문을 제기하게 만드는데, 이러한 혼란이 마치 <세계가 없는 사람>과 유사하다고 밝히며, 계층적 구분과 필연적인 질서에 대하여 문제를 제기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27 Jeffrey Skoller, 「Review: The Man without a World by Eleanor Antin」, Film Quarterly, Vol. 49, No.1, 1995, p.31. <세계가 없는 사람>은 초반부터 허구를 실재적으로 서술하며 허구적 스토리를 창조하지만, 그 허구 안에는 실재와 허구가, 논리와 상상이 뒤섞여 있다. 무엇이 실재이고 무엇이 허구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안틴은 이처럼 사실의 재현이라는 기존의 창작방식을 깨트리고 오히려 허구의 전략을 통해 실재를 더욱 사유화하여 사실의 나열보다 더욱 사실적인 스토리를 창조한다.


3. 세계가 없는 사람: 세계가 많은 사람

엘레노이 안틴의 작품을 살펴보며 의문이 들었을 수 있다. 타인을 대신할 수 있다는 것은, 타인의 목소리를 대신 낼 수 있다는 것은 주체가 목소리 낼 수 있는 입장에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 수도 있다. 실제로 안틴의 작품 속 허구의 전략은 주체의 권력을 활용한 타자의 대상화라는 비판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안틴의 작업은 1970년대에 그들만의 정치를 이야기하였던 백인 페미니스트를 향한 비판이 될 수 있었지만, 동시에 소수자 집단(흑인)의 외양을 그들의 스테레오 타입으로 따라하는 것을 통해 오히려 소수자 집단을 대상화하는 한계점에 봉착하게 되기도 하였다. 테리즈 스미스(Cherise Smith: 1969~)는 안틴이 소수자의 정체성을 드러내기 위하여 흑인을 소재화하여 인종모방하는 형식을 과도하게 사용하였다고 비판하며 이러한 안틴의 전략이 사회적 인식과 관계성을 전복시키지 못했다고 평가하였다. 또한 그는 안틴이 자신보다 더 특권적이지 못한 이들을 대신해서 말할 수 있는 권한이 자신에게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고 말하며28Cherise Smith, 앞의 책 p.100. 발레리나를 연기하는 과정에서는 여성의 성별화된 고정관념을 더욱 부각시키는 방식을 취했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주장은 로즈 리 골든버그(RoseLee Goldberg)의 평가에서도 드러난다. 그는 안틴이 행한 공연에 대하여 아무도 그를 흑인으로 인지하지 못하였다며 그녀의 프로젝트가 사회적 인식을 변동시키는 것이 아닌 단순한 퍼포먼스에 불과하다고 평하였다. 공연 비평가이자 역사학자인 셀리 베네스(Sally Banes)는 안티노바 프로젝트를 “나쁜 인종차별주의자의 농담”이라고 비판하였다. 이와 같이 안틴의 작업, 특히 흑인으로 분장하여 역할 놀이하는 엘레노라 안티노바 작업은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하였다. 하지만 안틴은 이러한 비판을 반박한다. 그는 작품을 통해 외적인 흑인의 특징(인종차별적으로 읽힐 수 있는)들이 아니라 존재적인 흑인성을 강조하면서 백인 남성 가부장제 사회 속에서 소외된 이들이 얼마나 효과적으로 침묵하게 되는지 드러내고자 하였다고 밝힌다. 그리고 그 이유로 흑인들과 여성들은 마찬가지로 보이지 않고, 부끄럽고, 걸리적거리는 존재로 간주되는 현실에 대하여 말한다.29 Huey Copeland, 앞의 글, p. 31. 

안틴은 자신에게 자아가 없다고 말하였는데, 이는 자신이 세계가 없는 사람, 즉 목소리를 낼 수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말하는 듯하다. 안틴은 랑시에르가 말하듯 예술을 통해 몫을 얻지 못한 사람들의 자리를 만들고자 하였고, 질서 있던 치안에 균열을 내어 정치가 작동하게 만들고자 하였다. 안틴을 비판하였던 테리즈 스미스 역시 안틴이 백인의 특권으로 흑인의 권리를 주장할 수 있었지만 안틴은 유대인으로서 유색인종 주체들의 공동의 노력을 이끌어내고자 하는 욕망에 사로잡혔을 것이라고 안틴을 변호한다.30 Huey Copeland, 위의 글, p. 32.

안틴은 2012년도 새롭게 공연한 <혁명 전>에 70세의 나이로 다시 등장한다. 2막과 3막 사이에 등장한 그는 다음과 같은 독백을 읽는다. 

때때로, 한 사람과 그의 이름 사이에는 공간이 있다. 나는 언제나 나의 이름에 도달하지 못한다. 나와 엘리노어 안틴 사이에는 가끔 공간이 있다. 아니다,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나와 엘리노어 안틴 사이에는 언제나 공간이 있다. 나는 그것이 없는 것처럼 행동하고, 나는 그것이 없다고 믿게 만든다. 최근 은행에서 나의 수표를 바꿀 때 나의 서명은 읽히지 않았고, 은행원은 내게 이 서명은 중요한 사람의 서명이라고 말했고, 나는 그를 향해 “너는 이 서명을 읽지 않았다, 그저 인지했을 뿐이다”라고 소리쳤다. 이것은 내가 이름을 갖게 된 것과 유사하다. 그리고 나는 옳았다. 은행이 나의 수표를 현금으로 바꾸었기 때문이다. 이 이상하고 이해할 수 없는 낙서는 신용을 가지고 있다. 나와 나의 이름 사이는 신용으로 채워질 수 있다. 31 Sometimes there is a space between a person and her name. I can’t always reach my name. Between me and Eleanor Antin sometimes there is a space. No, that’s not true. Between me and Eleanor Antin there is always a space. I act as if there isn’t. I make believe it isn’t there. Recently, the Bank of America refused to cash one of my checks. My signature was unreadable, the bank manager said. “It is the signature of an important person,” I shouted. “You do not read the signature of an important person, you recognize it.” That’s as close as I can get to my name. And I was right, too. Because the bank continues to cash my checks. That idiosyncratic and illegible scrawl has credit there. This space between me and my name has to be filled with credit.

Eleanor Antin, <Before the Revolution>, Hammer Museum, Los Angeles, 2012.

안티노바는 독백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이 순수하게 읽히지 않고 사회적 맥락 속에서 의미화되고 분류되는 것에 대하여 말한다. 그는 불안정한 정체성을 해석하는 사회적인 인식을 들춰내고자 하였으며, 작품을 통해 소외되고 침묵 당하는 존재로서의 흑인 혹은 여성을 부각시키고자 하였다. 안틴은 자신을 세계가 없는 사람이라 말하지만, 그가 만들어낸 역할들은 각각 자신의 세계를 지니고 있다. 솔리나 해변의 왕은 환경 파괴를 막고자 하는 의지를, 안티노바는 백인의 필드로 여겨지는 무용계에서 존재했던 흑인 발레리나이자 다양한 배역을 꿈꾸었던 무용수의 삶을, 간호사는 스테레오 타입으로 만들어진 간호사의 이미지와 폄하되었던 간호 업무가 사회 속에서 어떻게 기능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그리고 안티노브 감독은 유대인의 불안과 사회적 차별을 드러내며, 소수자들이 겪는 불평등을 들춘다. 이와 같이 안틴은 여러 역할을 창조하며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냈다. 세계가 없는 사람으로 자신을 소개하는 안틴은 세계를 많이 만들어낸, 어쩌면 세계가 많은 사람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