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호의 저장고(Archive of Slogans)
: 홍콩 M+시각문화박물관의 ‘반송중 시위’ 관련 아카이빙 거부 논란을 중심으로

미래완료

퀴어 연구자 루인은 전시 《씨 뿌리는 여자들(Spread Her Seeds)》의 라운드테이블에서 아카이브가 미래완료적인 속성을 가진다고 말했다. 미래완료시제(future perfect tense)는 미래의 어떤 시점까지 어떤 동작이 막 끝나 결과가 있을 것임을 드러내는 시제이다. 종결되지 않은 동작이 이미 종결될 것이라 예상해버리고 마는 이 시제로부터 우리는 어떻게 아카이빙을 떠올릴 수 있을까? 퍼포먼스 연구자 사이먼 존스(Simon Jones)의 글에서 우리는 아카이브의 미래완료적 속성을 엿볼 수 있다. 존스는 퍼포먼스가 현재 존재함(present being)인데 반하여, 아카이브는 미래의 사가(史家)들에게 주어질 예정인 무언가(what it will have been to future historians)로 보았다.[1] 즉, 아카이브란 결국 ‘미래에 추측되어버릴 기억을 수집하는 일’이며, 그 ‘기억이 생산되고 있는 지금을 수집하는 일’인 것이다. 우리는 아카이브가 개봉될 시점을 상정하고, 지금 비축하고 있는 이 자료들이 그 시점에 도달했을 때 어떻게 받아들여질지를 상상한다. 이때 아카이브는 왜 미래의 시점에서 과거를 되돌아보듯 ‘추측되어 버리는 일’일까? 루인의 설명을 빌리자면, 아카이브란 “단지 데이터의 축적이나 정리가 아니라 데이터들 간의 관계성을 밝히는 일”이다. 그렇기에 아카이브는 자료가 쌓여있는 곳을 넘어서서 특정한 관점을 가지고 열람되기를 기다리는 장소라야 하는 것이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아카이브가 능동적으로 미래를 생산하는 장소이며, 미래완료시제적인 플랫폼이라고 말해볼 수 있다.

지난 해, 홍콩은 무수한 기억이 생산되고 있었던 도시였다. 동아시아 금융허브의 중심지에서 일어난 일련의 시민불복종은 하루하루 수많은 사람들의 뇌리에 깊숙히 박혔다. 언론과 연구자들은 현재진행형인 홍콩의 ‘반송중 운동’의 기억들을 엮고 분석해왔다. 데이터 뿐만 아니라 데이터의 관계성을 찾아나가며 기억은 공유될만한 것으로 떠오른다. 그럼에도 아직도 홍콩에 대한 기억은 파편화되어 있고 어떤 인상에 불과한 경우가 많다. 휘황찬란한 홍콩섬의 스카이라인과 최루탄이 날아다니는 치열한 시위현장 등의 이미지 몇 장이 기억 속에 흩어져 있다면 그것은 아카이브가 아닐 것이다. 데이터 간의 관계성을 위하여 그 방법론을 정교하게 고민하지 않는다면, 치열한 저항의 기억들이라고 하더라도 두서 없이 쌓이는 잔상에 불과해진다. 이 글은 바로 지난 해 일어난 홍콩의 시민불복종, ‘반송중 운동(反送中 運動)’에서 무수히 발생한 시각문화 이미지들을 M+ 시각문화박물관이란 기관에서 아카이빙하기를 거절한 사태를 가지고, (홍콩의 어느 기관명과 같이) 아시아(Asia)와 시각문화(Art)와 아카이브(Archive)라는 세 개 항의 관계를 알아보고자 한다.

지나치게 많은 홍콩에 대한 레퍼런스, 서구룡문화지구

청킹맨션(重慶大廈)이 영화 <중경산림(重慶森林)>에서 양조위(梁朝偉)의 질주를 뒤로 하며 ‘역사화’ 되었다면, 카오룽 반도(九龍半島) 서쪽에 위치한 대규모 문화단지인 ‘서구룡문화지구(西九文化區)’는 ‘지금’이라는 시점의 레퍼런스를 게걸스럽게 먹어치우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서구룡문화지구는 사업 추진 과정에서 홍콩의 정치적 이슈인 ‘일국양제’, 경제적 이슈인 ‘부동산 자본주의’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서구룡문화지구 개발사업을 통해, 우리는 고속성장한 아시아 지역에서 ‘문화(기관)이 어떤 식으로 형성되어 왔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

1996년, 홍콩을 비롯한 아시아의 네 마리 용이 하나 같이 호황을 구가하고 있을 때, 당시 홍콩관광협회(HKTA·Hong Kong Tourist Association)는 수백만 명의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홍콩을 방문하면서 가장 필요하다고 느낀 것은 무엇인지 묻는 설문을 진행한다. 이중 130만 명의 관광객이 문화행사에 관심을 가지고 있으며, 홍콩정부가 이를 홍보할 필요가 있다고 답한다. 이로부터 2년 뒤, 홍콩관광협회는 홍콩 입법회에 문화시설 추가 건립을 제안했으며, 당시 행정장관인 퉁치화(董建華)는 정책 발표에 오늘 날의 서구룡문화지구(West Kowloon Cultural District) 건립을 포함하는 문화지구 개발안을 포함시켰다. 이후 90년대 초부터 논의되오던 구룡반도 서쪽의 약 40에이커(161,874평방미터) 가량의 개간지의 용처 역시 서구룡문화지구 개발부지로 낙점된다.[2] 아울러 서구룡문화지구 설계 공모에서는 세계적인 건축가 노만 포스터(Norman Foster)의 회사 포스터 + 파트너스(Foster and Partners)의 설계안이 선정된다. 할 포스터(Hal Foster)가 진단했듯이, 포스터는 비즈니스나 관료적인 이미지를 탈피하기 위하여 자신이 손으로 그린 스케치 몇 장을 제시하며 예술가적 면모를 의도적으로 내세우면서, “건축적 생산보다 예술적 실천과 밀착된 자율적 개발의 논리를 강조”했다. 홍콩을 비롯한 신자유주의 도시들은 바로 포스터의 이러한 예술가적 면모가 도시의 이미지 관리에 유용하다고 판단했다. 포스터의 관심은 건축의 스펙터클한 효과에 있었고, 이 스펙터클은 컴플렉스가 들어서는 지역의 “민주적인 요소를 대체할 만한 좋은 대용물”로 받아들여졌다.[3] 96년 이래로, 홍콩의 거주민이 아닌 관광객을 대상으로 한 질문이 건축가의 욕망을 실현시키는 것으로 이어지는, 10년 간의 서구룡문화지구 설립과정은 홍콩으로 대표되는 신자유주의 도시 속에서 문화의 형성이 실은 정부 홍보와 상업지구 개발을 겸하는 컴플렉스(complex)의 완공을 의미한다는 점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러한 컴플렉스의 등장은 필연적으로 문화를 컴플렉스로 이해하는 권위주의 정부와 부동산 자본주의와의 결탁을 예고할 수밖에 없었다. 이에 홍콩 얼터너티브스(Hong Kong Alternatives)와 같은 홍콩의 주거와 도시문제에 목소리를 내는 단체는 서구룡문화지구의 부동산 투기 양상를 우려하며 입법회에 호소문을 제출하기도 했다.[4] “서구룡문화지구는 상품이 아니다! 이윤창출을 위한 부동산 개발에 쓰일 수 없다!(WKCD is not for Sale! Not for commercial property development!)”고 외치는 이 단체의 주장의 곁에는 전기세 납부가 어려워 집을 등지고 맥도날드에서 잠을 청하는 맥난민(McRefugee)과 창문도 없이 간신히 누울 수만 있는 닭장집에 사는 홍콩인들이 있다.

부동산 자본주의 논란과 착종된 서구룡문화지구의 건립과정을 뒤로 하고 주변을 살펴보면 기차역이 들어서고 있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우리는 홍콩서구룡역(香港西九龍站)이라는 이름의 이 역이 지하철역이 아닌 기차역이라는 점을 유의해야 한다. 왜냐하면, 이 역은 홍콩과 인접한 중화인민공화국 남부 대도시인 선전(深圳)의 선전북역(深圳北站) 뿐 아니라 광동성(广东省)의 중심지인 광저우(广州) 남부를 지나는 광저우 남역(廣州南站)을 잇기 때문이다. 중국 4대 일선도시(一线城市: 베이징, 상하이, 광저우, 선전) 중 두 도시가 바로 이 역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이 역이 건설되는 목적 중 하나는 대륙 중국의 관광객 – 서구룡문화지구를 포함하는 홍콩 전체 방문객 – 유입을 보다 원활하게 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철도 건설의 목적이 2014년 우산운동(雨傘運動, Umbrella Movement)을 포함하여 민주화운동이 갈수록 빈번해지는 홍콩으로 여차하면 내륙의 군대를 급파하고 군수물자 운송을 위한 보급로를 마련하려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실제로 2019년 ‘반송중’ 시위가 격화되었을 때, 홍콩과 인접한 선전에서 민주화운동을 향해 무력시위를 하듯 군사훈련이 있었다. 이 역이 완공될 경우, 중국의 주요 도시 중 두 군데가 홍콩과 연결되는 것이며, 홍콩에 주둔하고 있는 인민군 이외의 군대가 파견되는 루트로 이 역이 사용될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이처럼 서구룡문화지구의 좌표는 홍콩의 지정학적 맨틀의 위에 자리하고 있으며, 그 연결지점이 일국양제의 환승역 그 자체라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후술하겠지만, 서구룡문화지구 내의 M+ 시각문화박물관의 소장품 목록은 근래에 홍콩 작가들의 미술품보다 내륙 중국의 근현대 미술품 비중이 눈에 띄게 높아졌다. 문화(기관)의 소장 범주에서 위치에 이르기까지, 베이징 정부가 내세우는 ‘하나의 중국(一个中国)’의 영향력을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 비엔날레와 미술관을 “포스트 민주주의적 과두정권들을 위한 문화적 정제 공장”[5]으로 바라본 히토 슈타이얼(Hito Steyerl)의 주장을 참조한다면, 홍콩의 문화(시설)은 차라리 중국몽(中国梦)에 복무하는 문화적 군수공장이 되어가고 있다.

이처럼 서구룡문화지구는 홍콩의 정치경제적 상황의 작용과 반작용이 지속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판들의 경계이다. 서구룡문화지구는 홍콩 뿐만 아니라 고속성장한 아시아 사회, 특히 아시아의 네 마리 용이라 불리는 지역이 문화를 어떻게 대우하는 지에 대하여 보여주는 주요한 사례를 제공한다.

느닷없는 문화화

그렇다면, 이렇게 형성된 아시아 문화(기관)은 어떻게 운영될까? 홍콩의 연구자이자 기획자인 오스카 호(Oscar Ho, 何慶基)는 2000년대 이래로 아시아 지역에서 예술에 대한 막대한 지원이 이루어진 것은 문화 그 자체에 대한 지원이기보다 경제적 가능성(economical possibility)과 국가적 / 지역적 자부심(national / regional pride)을 위한 문화산업(cultural industry) 육성에 가깝다고 진단한 바 있다. 특히 2011년 홍콩에서 열린 아시안 큐레토리얼 네트워크(ACN: Asian Curatorial Network)의 개막식 포럼에서, 오스카 호는 M+ 시각문화박물관 재개관 운영기획과정에 참여한 경험을 토대로, 「그림자 아래에서: 아시아의 박물관 개발의 문제점들(Under the Shadow : Problems in Museum Development in Asia)」이라는 글을 발표한다. 이 원고에서, 그이는 아시아 사회의 문화(기관) 개발과정에서 ① 낙후된 문화 인프라(underdeveloped infrastructure), ② 보수적인 행정문화(conservative administrative culture), ③ 피식민지 사고방식의 지속(prolongation of the colonial mindset), ④ 서구중심적 문화인식(Western cultural domination)과 같은 문제가 공통적으로 발견된다고 보았다. 오스카 호는 이와 같은 문제가 문화기관이 설립된 지역의 ‘지역성’을 드러내는데 지속적으로 실패하게 만드는 원인으로 작용한다고 지적한다. ‘아시아의 문화허브’라는 명칭이 전광판처럼 반짝이고 있지만, 정작 M+ 시각문화박물관이 점차 근현대 중국미술의 허브가 되어가면서 홍콩이라는 지역성은 빛을 바래가고 있는 실정이다. 성장 슬로건이 문화(산업)에 이식되면서, 아시아 도시에는 정치적·경제적 모순을 교묘하게 상품화한 컴플렉스(complex)들이 세워지면서, 지역은 잘못 해석되거나 해석되기를 포기한 채, “느닷없이 문화화(suddenly cultured)”[6] 되어 버린다. 이와 같은 상황 아래서, 아시아 지역 문화(기관)의 형성과 운영은 문화적 기억의 아카이빙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까? 우리는 앞서 말한 M+ 시각문화박물관에 질문을 던짐으로서, 아시아의 문화(기관) 아카이브 시스템에 대한 질문을 대신할 수 있다. M+는 무엇을 수집할 수 있는가?

‘반송중’ 반송중

‘반송중 운동’은 홍콩의 범죄인 인도조약 수정조례 중, 중국 정부에서 범죄자로 판단한 경우 해당 인사의 재산을 동결시키고 홍콩 경찰과 협조하여 본토로 체포할 수 있다는 조항에 반발한 것으로 시작되었다. 2019년 6월 9일, 홍콩 인구의 7분의 1인 103만 명의 인파가 거리로 나온 이래, 반송중 운동은 반 년 넘게 지속되었다. 홍콩 시민들은 이 과정에서 홍콩 민주화 운동의 정당성과 이를 탄압하는 정부와 경찰을 비판하는 각종 이미지들을 생산해내기 시작한다. 엄격한 공공장소 법안 때문에 그래피티(graffiti) 제작이 어려운 홍콩에서, 체코 프라하처럼 정치적 요구사항을 적은 포스트잇을 벽면에 붙인 ‘존 레논 벽(John Lennon Wall)’이 여기저기 들어섰다. 시위대의 동선을 파악하기 위해 남용되는 CCTV에 대하여 시민들이 레이저 포인터로 저항하면서 우주박물관(香港太空館) 벽면에는 현란한 레이저 시위가 벌어지기도 했다. 정치적인 담론이 오가는 홍콩의 인터넷 커뮤니티 LIHKG의 캐릭터 ‘린주우(連豬)’와 ‘린구오(連狗)’ 그리고 미국의 맷 퓨리(Matt Furie)가 제작한 캐릭터 ‘페페 더 프로그(Pepe the Frog)’가 홍콩시위에서 다양하게 사용되는 등, 온라인 밈이 오프라인 시위현장의 밈으로 사용되었다. 이외에도 하루가 멀다하고 다양한 시위 구호와 포스터 그리고 인터넷 포스팅 등이 폭발적으로 양산되고 있는 중이다. 작가 개인의 창작 프로세스 방식 외에도 시각문화에 있어서 유의미한 문화적 기억이 무수하게 생산된 것이다.

이때 홍콩의 문화계는 건립 중인 M+ 시각문화박물관에 주목했다. M+는 처음부터 그 명칭이 ‘박물관보다 더(more than a museum)’한 무엇가를 표방했으며, 수집과 기획의 범주를 ‘20-21세기의 시각예술품, 디자인, 건축, 영상물 그리고 홍콩의 시각문화’[7]로 설정했다. 그 ‘더한 무언가(more than)’란, 수집과 기획의 범주를 여느 미술관처럼 소위 ‘미술’이라 불리는 창작자의 생산물로 제한하지 않고 ‘시각문화’로 넓혔다는 데에 있다. 사람들은 시각문화 안에서도 오늘날의 홍콩을 가장 격렬하게 증명하는 ‘반송중 운동’의 이미지들이 M+의 차별화된 컬렉션 목록에 등장하기를 바랐다. 이에 따라, 홍콩의 언론사 스탠드뉴스(Stand News)의 기자이자 편집자인 응틴쉬(楊天帥)는 M+ 시각문화박물관에 ‘반송중 운동’에서 생산된 포스터와 영상기록물 등을 수집하고 연구해줄 것을 요청한다. 그러나 M+측은 이에 대해 거부의사를 밝힌다. 응틴쉬가 정리한 바에 따르면, M+측이 아카이브를 거절한 이유는 다음과 같다.

① M+는 역사 박물관이 아니라 ‘시각문화 박물관’이므로, ‘반송중’ 관련 작업을 수집하지 않는다. ② (M+의) 컬렉션은 주로 시각 예술, 디자인, 건축 및 영상 분야를 다루고 있기 때문에, ‘반송중’ 관련 작업을 수집하지 않는다. ③ (M+의) 수집 목적은 ‘미학적으로 문화적으로 혁신적인 작품과 오브제를 수집’하는 것이기 때문에, ‘반송중’ 관련 작업을 수집하지 않는다. ④ 전문가와 관련 소위원회의 철저한 조사와 상세한 토론 후에 ‘반송중’에 관련한 작업들이 수집될 수는 있지만, 아직 그러한 토론이 없었으므로 ‘반송중’ 관련 작업을 수집하지 않는다.[8]

M+시각문화박물관의 이와 같은 답변에 대하여 응틴쉬와 오스카 호(何慶基)는 스탠드뉴스의 지면을 통해 즉각 반박에 나선다.

①에 대한 반박: ‘반송중’ 운동 중 나타난 시각적인 표현은 당대의 역사적인 사건을 다룰 뿐만 아니라 그 자체로 시각문화의 하나이므로 수용되어야 한다.(응틴쉬) 또 모든 사건은 역사화되며, 현재 수장된 모든 사물은 역사의 산물이다. 이미 M+에서 수장하고 있는 시각문화는 역사적인 근거를 바탕으로 수집된 것이므로, 현재의 역사적 의의를 가진 사건에 대한 시각적 표현을 수집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오스카 호)

②에 대한 반박: M+는 웹사이트 소개문에서 자신들의 소장품을 20-21세기의 시각예술품, 디자인, 건축, 영상물 그리고 홍콩의 시각문화로 범주화하고 있다. 그런데 소장 요청을 거절하는 답신에는 바로 이 ‘홍콩의 시각문화’라는 항목이 삭제되어 있다. 이는 오늘날의 홍콩을 가장 선명하게 드러내는 ‘홍콩의 시각문화’를 고의적으로 누락시키고 있다는 의구심을 자아내기에 충분하다.(응틴쉬) 또, 새롭게 개관하는 M+가 ‘미술관’이 아닌 ‘시각문화박물관’임을 내세웠을 때, 그 의의는 구미권에서 형성된 ‘순수미술’의 범주에서 벗어나 홍콩의 근현대 시각성을 가장 잘 드러내는 ‘대중문화’를 기관에서 수장할 기회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이 부분이 제대로 명시되지 않은 컬렉션 범주 자체에도 문제가 있다.(오스카 호)

③에 대한 반박: ‘CNN’에서 ‘Artnet News’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외신 기자들은 홍콩의 그 어떤 문화행사보다도 ‘반송중’ 운동이 촉발시킨 문화적 움직임에 지대한 관심을 가지며 또 M+가 ‘반송중 운동’ 관련 시각문화에 결핍되었다고 보는 미학적이고 문화적인 의미를 해외 언론은 발견해내고 있다.(응틴쉬) 또 정치적인 구호로 뒤덮힌 존 레논 벽과 홍콩우주박물관(香港太空館) 외벽에 펼쳐진 레어져 포인터에 대한 영상기록물 등은 홍콩 반환 이후 가장 눈에 띠는 시각문화이며 일종의 공공미술로 이해될 소지가 크다.(오스카 호)

④에 대한 반박: 소장품 범주에 대한 위원회의 토론이란 아예 부재했거나 했다고 한들 ‘정치’를 핑계삼아 공개하지 않을 것이기에 유명무실할 따름이다.(응틴쉬) M+ 관리 인력들은 대부분 관료화 되어 예술기관으로서의 독립성을 상실했을 것으로 보이며, ‘전문가 그룹과 관련 소위원회’ 토론에 참여한 이들은 ‘홍콩적 관점(Hong Kong perspective)’과 ‘현재(NOW)’에 대한 이해를 배태해야만 할 것으로 보인다.(오스카 호)[9]

아카이브의 범주와 속도

M+ 시각문화박물관 측의 거절사유는 모호한 정의와 실체 없는 논의, 기약 없는 기대를 약속하는 등 문화관료들이 내세우는 전형성을 보여준다. 그럼에도 응틴쉬와 오스카 호의 반박 논거를 통해, 우리는 아시아의 문화(기관)의 아카이브 담론을 심화시킬 수 있다. 특히 아카이브의 ‘범주’와 ‘속도’의 문제에서 말이다.

우선, ①과 ②의 문제는 ‘아카이브의 범주 문제’와 맞닿아 있다. ①의 모순은 M+가 현대미술 전시장이 아니라 수장을 겸한 아카이빙 구축을 목적으로 두고 있다고 천명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아카이빙이란 본질적으로 기억을 준비하는 일이므로, 역사와 거리를 두고자 하는 시각문화 아카이빙이란 존재할 수가 없다. 그렇다면 잠시 기억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문화연구자 알라이다 아스만(Aleida Assmann)은 기억을 두 가지 상보적 양태로 보았다. 하나는 목적의식이나 가치에 따라 활성화된 기억인 ‘기능기억’이다. 다른 하나는 기능기억에 비하여 현재 활성화되지 않고 뒤에 물러서 있는 기억이자 기억들의 기억인 ‘저장기억’이다. 아스만은 기억에 대한 연구자들이 기억(아스만에게 있어서 ‘기능기억’)과 역사(아스만에게 있어서 ‘저장기억’)를 상호대립적인 구도로 보는 데에 반대하며, ‘기능기억’은 전경(前景)에서 활성화 된 상태로, ‘저장기억’은 후경(後景)에서 비활성화 된 상태로 본다.[10] 이에 따르면, 아카이브는 당장 활성화된 기억은 아닐지라도, 언젠가 ‘기능기억’으로 떠오르기를 기다리는 ‘저장기억’으로 볼 수 있다. 주로 집단의 지향점 등에 의하여 활성화 되는 ‘기능기억’은 해당 집단이 판단하는 정상성의 여부에 따라 유지되는 경향이 있다. 그렇기에 아스만은 “국가나 민족과 같은 집단적 행동 주체들은 기능기억 위에 지은 집”[11]이라고 말한다. 반면 ‘저장기억’은 ‘기능기억’처럼 자연발생적이지 않기에, 인위적으로 노력하지 않는다면 망각되어 버리고 만다. “문화적 전환 가능성의 조건”이자 “기능기억에 대한 교정책”으로서의 저장기억[12]은, 사회적 정상성에 멀어진 사회저항이나 소수자 이슈 등을 태우지 못할 수도 있는 것이다. 현재 저항의 열기가 추후 더 큰 집단의 레퍼런스로 활용되고 활성화된 기억의 영역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지속적인 보존이 필수적이다. 아카이브의 중요성은 바로 이러한 ‘기억의 기억’으로서의 저장기억을 비축해두는 것에 있다. 동시대가 역사로 이어지는 것은 결코 자연발생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반송중 운동’이라는 동시대 사건을 쉽게 역사로 편입시키는 것 역시 문제가 될 소지가 있다는 것을 모르는 바는 아니다. 그러나 그것이 M+ 측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단지 거실에 걸어둘만한 중립적인 문화상품만을 소장해야한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특히나 90년대 중반 이래로 홍콩이 중국 현대미술시장의 중심적인 역할로 위치지어진다는 것을 안다면, M+의 소장 범주에는 역사화되지 않는 시각문화, 즉 즉각적으로 소비되는 문화상품만이 있을 따름인 것이다. 이 경우, 홍콩이라는 시공간적 좌표는 흐릿해진 채, 베이징 정부가 예외적으로 허용한 가판대만을 발견할 수 있을 따름이다.

②에서 확인할 수 있는 M+의 컬렉션 범주를 보면, 기존 현대미술관들의 소장 범주와 차별 지점이 없다. 이는 M+가 기관명에서 내세우고 있는 ‘시각문화’라는 정의 자체가 고작 확장된 현대미술의 영역으로 회귀되어 버리고 있음에도, 이에 대한 문제의식이 없음을 드러낸다. 특히나 M+가 ‘박물관보다 더(more than a museum)’한 무언가를 의미한다는 점을 떠올린다면 말이다. 박물관의 주요 기능 중 하나가 수집(acquire)과 보존(conserve)[13]인 만큼, 현행 박물관과 미술관의 소장 시스템과의 차별화는 오스카 호가 앞서 살핀 ‘대중문화’로의 소장 범주 확대로 볼 수 있다. 장르 뿐만이 아니다. 위에서 오스카 호가 말한 ‘홍콩적 관점(Hong Kong perspective)’이란 ‘현재(NOW)’에 대한 개념의 재구성으로 가능한 개념이다. 오스카 호는 M+가 오늘날 박물관과 미술관이 자신을 소개하는 시간대인 ‘동시대(contemporary)’나 ‘근대/현대(modern)’를 거부하고 ‘20-21세기’로 특정했음에 주목한다. 이는 홍콩을 비롯한 아시아 지역에서 바로 위 시간대가 적절치 않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14] 지리학과 중국학 연구자인 캐롤린 카르티에(Carolyn Cartier)가 한 연구에서 식민시대보다도 1997년에서 2007년 사이의 20년에 주목한 것은 이 특정 시기가 후기식민주의 비평의 토대가 되는 식민지 시기가 아니면서, 문화예술의 식민적 관점과 불가분의 관계가 있는 이슈들의 합이기 때문이다.[15] 그리고 이때 20-21세기란 단순한 시간의 표현 뿐만 아니라, 홍콩의 미술계가 바젤 아트페어와 같이 ‘고급예술’의 거래 플랫폼으로 유효한 곳임과 동시에, 네온사인의 거리나 느와르 영화의 이미지 등 아시아 이미지를 유효하게 구축해 온 ‘대중예술’의 비옥한 영토로서 기능한 시간대이기도 하다. ‘대중예술’ 뿐만이 아니라, ‘사회참여예술(socially engaged art)’ 역시 현재 홍콩에서 활발한 방식 중 하나이면서, M+가 아카이브 범주를 새롭게 고찰할 때 고민해야 하는 주요한 질문지들을 던져준다. 연구자 파블로 엘게라는 사회참여예술이 여전히 논란이 있지만, ‘사회적 교류에 대한 의존성(dependence on social intercourse)’이 강한 예술의 한 장르[16]로 정의한 바 있다. 아울러 헬리콘 콜라보레이티브(Helicon Collaborative)에서는 사회참여예술을 일반적인 작가 개인의 창작 프로세스로 작업이 제작되는 ‘스튜디오 아트(Studio Art)’과 비교하여 논쟁적이지만 유의미한 범주화를 내린 바 있다. 이들이 정리한 ‘실천에 있어서의 아홉 가지 범주(nine variations in practice)’는 사회참여예술이 단일한 주체, 단일한 과정, 단일한 형태로 진행되지 않기에, 각 범주의 축에 따라 다양한 위치로 점유될 수 있음을 밝히고 있다.[17]

‘고급예술’이 일국양제라는 홍콩의 지정학적 이점에 따라 이식되었거나 ‘서구’를 참조한 성격을 가진다면, ‘대중예술’이나 ‘사회참여예술’은 홍콩에서 자생되었다는 성격을 가진다. 대중문화에서 광동어를 구사하는 배우들이 무더운 기후 아래서 고도로 도시화된 배경을 등지고 펼치는 일련의 이미지들은 분명 아시아적 표상의 하나다. 사회참여예술은 홍콩의 모순과 마찰을 빚으며 홍콩이라는 경계선을 극명하게 드러낸다.[18] 사이먼 존스는 퍼포먼스만을 예로 들었지만[19], 기존의 아카이브 프로세스에 잘 포착되지 않는 형태는 아카이브의 한계를 명확하게 인지시킴과 동시에 그 정의(definition)를 진보시킨다. 반면 홍콩의 유력 문화기관에 ‘수입된’ 외국인(특히 구미권 예술계 인사) 기획자는 자신에게 익숙한 ‘순수예술’을 재료로 전시를 기획하게 되는데, 이러한 전시들은 홍콩에 대한 유효한 관점을 제시하기보다, 홍콩에 거주하는 해외 유수의 예술계 인사들과 홍콩을 해외진출의 교두보로 삼고자 하는 중국의 현대미술가들이 얼마나 초대되고 입소문과 펀딩을 끌어모으냐를 성취의 척도로 여기는 경향이 있다. 무엇을 홍콩으로 볼 것인지보다 무엇을 홍콩에 수입할 것인지가 우선되어 버리는 것이다. 이 ‘수입’이라는 지점에서 다시금 홍콩의 문화계는 정치경제적 교두보로 전락한다.

③과 ④의 문제는 ‘아카이브의 속도’ 문제와 연결되어 있다. ③을 통해서 우리는 M+가 가시적인 모든 것들을 소장 대상으로 삼을 수는 없다고 할지라도, 이들이 내세우는 미학과 문화가 동시대성을 수집하기에 너무 느리거나 수집에 대한 속도 자체를 포기한 것처럼 보인다는 점을 지적해야 한다. M+는 20세기와 21세기의 시각문화를 아카이브 하겠다고 선언한다. 그러나 실상 M+에게 있어서 20세기란 ‘고급미술’의 미학을 주워담는 게으른 속도의 다른 말이며, 21세기란 아카이브를 포기한 채 클레어 비숍(Claire Bishop)이 말하는 ‘여가와 오락을 위한 포퓰리즘 사원(a populist temple of leisure and entertainment)’이 되는 것에 만족하는 시대처럼 보인다. 낡은 상아탑 예술가들의 미학과 스타건축가들의 컴플렉스 안에서 투자자본으로 한껏 치장한 신자유주의 미학 사이에서는 포착되지 않는 시각예술의 언어들이 있다. 바로 ‘순수 예술’의 어법을 어눌하게 사용하거나 저항과 소수자성을 가지고 ‘미술’을 어색하게 발음하는 시각문화의 산물들이다. 이들은 아시아 문화(기관)이 내세우는 미학의 속도 아래서 자칫 빠르게 망각될 가능성을 가진다. 진보를 향한 저장기억을 능동적으로 형성하기 위해서, 우리는 미학와 예술의 정의를 주저 없이 교체할 필요가 있다. 가령, 자크 랑시에르(Jacques Rancière)는 미학을 “감각적 경험을 분배하는 체제”라고 얘기한 바 있다. 홍콩의 비평가 응양(楊陽)은 <공개서한(An Open Letter to Artists, Aspiring Artists, and the Art-Inspired in and with Hong Kong)>에서 예술은 “규범성에 대한 거부와 다르게 생각하기를 추구한다는 점”에서 시위와 비슷한 “반대의 힘 그 자체”라고 밝힌 바 있다. 우리가 미학과 예술의 이러한 진보적 정의를 신뢰하고 아카이브에 나선다면, 기획자 파트리시오 다빌라(Patricio Dávila)가 그이의 전시 《힘의 다이어그램(Diagrams of Power)》에서 ‘다이어그램’에 대하여 말한 바와 같이, 시각문화 아카이브는 “권력이 분배되어 있는 모습을 보여줌과 더불어 권력을 분배시키는 실질적인 길”[20]이 될 것이다.

④에서 말하는 바와 같이, 전문가 중심의 협의체를 통해 아카이브의 범주를 정하는 것에는 굳이 반대할 이유가 없긴 하다. 그러나 정작 이들을 구성하는 절차와 이들의 의견을 수용하는 방식, 그리고 이 방식을 수행할 인력 등의 문제는 아카이브의 속도를 지체시킬 따름이다. 동시대는 늘 논쟁적이며 그러기에 이들 기관의 전문가들은 아카이브 과정에 있어서 지나치게 ‘중립적’인 지침을 따르고 ‘사회적 합의’라는 안온한 속도로 사물을 유람하는 데에 만족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무엇보다도 문화에 대한 이해가 있는 이들이 보통 관료화되거나 배제되거나 둘 중 하나인 아시아 문화기관 안에서, 문화란 “문화 개발을 수행하기 위한 문화(culture for conducting cultural development)”이기 때문이다. 대규모 데이터베이스는 기관만이 가능한 일이라는 이유로 우리가 아카이브의 속도를 늦추는 것 역시 충분하지 않다. 무수한 텍스트와 이미지가 SNS에 올라가지만,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 등의 알고리즘은 아카이브 시스템에 전혀 들어맞지 않음을 알 수 있다. 망각이 이토록 가까운 사회에서 아카이브의 속도에 관심을 보이는 일은, 쉽고 빠르게 사라지는 증언의 보존연한을 늘리는 일이다. 앞서 오스카 호가 말한 바와 같이, 아시아는 식민시대 이후 문화적 인프라가 어수선해진 상황에서 열등감의 시간대를 상쇄할 우악스런 몸집불리기에 집착해왔다. 그리고 아카이브란 이 불어난 몸집을 역사화하는 일이었다. 당연히 몸집은 민족적-국가적-남성적 정상성의 자신감으로 충만한 몸집일 따름이다. 이때 아카이브의 속도에는 모두 관료주의가 동원되지만 기억에 따라 두 가지 양상을 보인다. 열등감을 망각하고자 하는 기억은 상위기관의 신속한 결재를 통해 빠르게 수집되며, 열등감을 드러내고 문제시하는 기억은 ‘사회적 합의’와 절차주의가 운운되며 더디게 수집된다. 문화적 열등감으로 구성된 민족-국가-남성 중심적 기억하기가 포퓰리즘적 민주주의와 만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정작 실체가 없는 ‘관점의 평균치’ 정도에 불과한 ‘사회적 합의’는 특정 지역, 세대, 집단의 이슈를 제대로 다룰 수 없는데, 이는 단지 ‘당사자성’의 부족 뿐만이 아니라, 대체로 ‘평균’이라는 속성이 기득권(다수)에 의해 조정된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즉, 기득권이 제공한 정상성 판타지가 평균을 이끌어가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아카이브는 기억의 합이 아닌 기억의 평균, 좀 더 세심하게 말하면 정상성 기억의 평균 정도가 되기 십상이다. 저장기억으로서의 아카이브란 이에 저항해야한다. 오스카 호가 지역 커뮤니티와 조우하여 해당 지역의 문화적 특이점을 기획으로 십분 끌어당긴 예로, 크메르 루즈(Khmer Rouge)의 생존자들과 협업한 큐레이터 에린 글리슨(Erin Gleeson)과 미군정기 오키나와 사람들의 집단 자살을 추적한 사진전을 기획한 엔도 미즈키(遠藤水城, Mizuki Endo)를 예로 들고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21] 클레어 비숍은 자본논리의 추상성과 회계연도보다 느린 시간으로 문화가 탄생한다고 보았다. 시간성의 문제에서 동시성의 결여는 외려 대안적 가치를 지닌 시간대의 세계를 연다고 본 것이다.[22] 홍콩과 같은 성장중심의 아시아 사회 안에서 문화(기관)의 건설은 문화의 형성보다 빠르고, 문화의 아카이브는 문화의 망각보다 더딘 듯 보인다.

아시아 문화(기관)의 당위와 한계

물론 문화기관의 보수성이 작동함에도 진보, 특히 문화적 진보의 가능성은 전개되어야 한다. 비숍이 비판한대로, 미술관의 기관적 속성이 보수적이라는 이유로 미술관의 진보보다 사회 변화에 주력하자는 양자택일의 문제에서 우리는 벗어날 필요가 있다. 공공미술관은 문화와 기억을 혹은 문화적 기억을 성찰적으로 제공할 수 있는 시설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시민을 길러내는 중요한 요소인 문화가 자칫 사치재로 전락될 가능성을 막는 역할을 여전히 수행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박애적인 나르시시즘의 저장고”가 되지 않으면서, 문화의 기능기억을 기획하고 저장기억을 축적하는 것은 문화(기관)의 의무다.[23] 특히 능동적으로 저장기억을 조성하려는 노력을 포기할 경우, 그 시간대는 쉽게 망각된다. 알라이다 아스만의 말마따나, “그것[저장기억]은 기능기억처럼 그렇게 자연발생적이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문화적인 지식을 보존하고 비축하고 추론하고 순환시키는 제도를 통해 지원을 받아야 한다. (…) 그러한 벽장이나 마당을 확보할 수 없는 사회는 저장기억을 구축할 수가 없다.”[24]

그럼에도 고속성장한 아시아 지역의 아카이브는 이와 같은 당위성을 내세우기에 아직 열악한 모습을 보인다. 오스카 호의 말대로, M+의 구상은 문화관료들에게 있어서 관례를 찾기 어렵고(too unconventional), 너무 복잡하며(too complex), 범주가 너무 큰(too big) 이유로, 간판 역할을 할 적당한 해외인사를 수입하는 것(import of overseas support)으로 귀결되고 만다.[25] 그리고 그 결과는 M+ 시각문화박물관의 아카이빙 거부 사태로 나타났다. 이는 아시아의 네 마리 용 지역, 즉 홍콩, 남한, 타이완, 싱가포르의 시각문화 수집과 전시 교육을 담당하는 기관이 포지셔닝 되는 지점의 유사성을 드러낸다. 특히 70년대 당시 고속성장을 구가하던 아시아의 개발도상국들이 아카이빙을 통해 자신을 식민화시키는 모습이 비치고 있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이들 지역에서 기관의 문화 인식이란, ‘기관홍보를 위한 광고판’이거나 ‘유권자 지지를 위한 위락시설’, ‘민원 가능성이 없는 유물’ 등에 불과하기도 하는데, 이는 근대적 문화자산을 만들 여력이 없는 상황에서 문화적 자부심의 근거를 민족-국가주의나 입장객수, 매표 수익, 만족도 조사와 해외의 평가 등에 두는 탓이 크다. 그리고 이와 같은 환경에서, 역으로 문화기관들이 포퓰리즘을 동원하며 소장품의 경제적 논리를 따지기 시작하는데, 이는 소장 비용, 보존연한, 장르와 매체의 분류 등에 영향을 끼치다가 종국에는 사설기관에 외주화되어 버린다. 결과적으로 아시아의 시각문화기관에서는 안목을 기를 역량이 미비하여 아카이빙의 범주화가 관례적으로 이어져 오거나, 사회적 합의를 따지며 진보를 반려하다가 동시대를 저장기억으로 인도하지 못하는 문제가 발생한다.

기억의 전경을 위하여

사이먼 존스는 퍼포먼스와 비교할 때, 아카이브가 목전에서 벌어지는 사건의 즉각성을 포착해내는 데에 한계를 보인다고 보았다. 아카이브가 미래완료시제를 닮았다고 할 때, 미래의 어느 한 시점에서 과거를 되돌아보듯 예언하고마는 힘이란, 다시 말하면 끝끝내 ‘지금 여기’를 말하는 데에 있어서 무력함을 반증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작금의 데이터를 통해 도래할 미래의 사건을 기획할 수 있는 것은 역시 파르티안 사법(Parthian Shot: 기마궁술의 일종으로, 달리는 말을 탄 상태에서 상체를 뒤로 돌려 활을 쏘는 방법)과도 같은 미래완료시제의 아카이브로 가능하다. 그렇기에 사이먼 존스는 동시대 작가들이 아카이브를 도래할 일들을 일러주는 “재귀 공간(recursive space)”으로 활용한다고 보았다.[26] 아울러 시각문화 아카이브의 방식을 기관의 범주와 속도에만 맡기지 않는다는 것은 아카이브 사용법의 폐기가 아니다. 루인은 정전(canon)을 폐기하는 것이 정전의 해석체계를 승인하는 행위이며, 정전의 재해석만이 기존의 체계 안에서 다른 공간을 창출해낼 수 있다고 말한다. 우리는 우리가 당면한 국면에 대하여 우리의 기준에 따라 저장기억을 확충할 필요가 있다. M+는 홍콩의 사회문화적 저장기억을 수집하는 데에 결국 주저하고, 스스로 범주를 재설정하는 데에 실패하고 만다. 동아시아 강대국들의 패권주의가 확산되고, 신자유주의가 사회적 변화를 무력화시키는 상황 속에서, 홍콩의 민주주의 운동은 향후 아시아 사회의 체제 변화를 가늠할 수 있는 유효한, 그리고 마땅히 공동의 정치적 감각으로 남겨야 할 기억으로 가득차 있었다. 그 기억은 부동산 자본주의와 기술독재(technocracy), 정책의 물신화(reification) 등을 선보이며, 식민성을 경험하고 재생산하는 고도성장 이후 아시아 사회에서, 향후 시민불복종을 가능한 미래로서 일구어낼 가능성을 내포한다. 홍콩을 아카이브 한다는 것은 바로 이러한 의미를 가진다. 기능기억처럼 우리가 저장기억이 자연적으로 취득할 수 있다고 여긴다면, 우리는 우리의 구호를 언젠가 망각해버릴지도 모른다. 반면 우리가 우리의 구호를 미래완료시제처럼 모아가고 있다면, 그 구호들은 지금 우리의 저장기억이 될 것이며, 언젠가 우리의 기능기억이 되어 기억의 전경(前景)에 다다를 것이다.

“우리는 이 시스템[사회참여예술의 실천영역]의 다른 부분들이 서로 보이지 않기에, [이를 조망할 수 있는] 지도가 필요하다. 이들이 보이지 않을 때, 실천의 신체 전체는 자원에 접근할 수 없게 된다.”[27]


[1] Simon Jones, “The Future Perfect of the Archive – re-thinking performance in the age of third nature”, Artists in the Archive, London – Routledge, pp. 301-323, June 2018, pp. 278-279 참조.

[2] Housing, Planning and Lands Bureau, “LEGISLATIVE COUNCIL HOUSE COMMITTEE Subcommittee on West Kowloon Cultural District Development”, 2005, p. 1 참조.

[3] 할 포스터, 김정혜 옮김, 『콤플렉스』, 서울: 현실문화, 2014, p. 81 참조.

[4] 이들은 서구룡문화지구가 본래 문화지향적 공간 설계에서 점차 상업-관광-문화복합지구로 변질되고 있으며, 이에 따라 다시금 홍콩에 난립한 콘크리트 정글이 될 가능성이 있다고 보았다 또한 2006년 당시 도심 공원의 70%가 콘크리트로 포장되고 공공을 위한 녹지공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황에서, 40억 홍콩달러를 사용하여 서구룡문화지구 일대를 덮는 거대 캐노피(서구룡문화지구 개발안의 하나였다.)를 건설해야 하는지 지적한다. Hong Kong Alternatives, “An appeal to develop WKCD as West Kowloon Cultural Green Park As a legacy for Hong Kong”, 2006; Hong Kong Alternatives, “SUBMISSION OF VIEWS ON THE WAY FORWARD FOR THE WEST KOWLOON CULTURAL DISTRICT PROJECT” 참조.

[5] 히토 슈타이얼, 김실비 옮김, 김지훈 감수, 『스크린의 추방자들』, 서울: 현실문화, 2018, p. 126 참조.

[6] Oscar Ho, “Under the Shadow Problems in Museum Development in Asia”, Contemporary Asian Art and Exhibitions Connectivities and World-making, ANU Press, 2014, p. 3 참조.

[7] “The M+ Collections are focused on twentieth- and twenty-first-century visual culture, encompassing the disciplines of design and architecture, moving image, visual art, and the thematic area of Hong Kong visual culture.”; https://collections.mplus.org.hk/en/about.

[8] 楊天帥. 2019,08,09,. 『Stand News』. 「問 M+ 為何不收「反送中」視覺文化產物,佢咁樣回覆我」; https://thestandnews.com/culture/問-m-為何不收-反送中-視覺文化產物-佢咁樣回覆我/ 번역 후 인용(번역: 요란).

[9] 楊天帥. 2019,08,09,. 『Stand News』. 「問 M+ 為何不收「反送中」視覺文化產物,佢咁樣回覆我」; https://thestandnews.com/culture/問-m-為何不收-反送中-視覺文化產物-佢咁樣回覆我/; 何慶基. 2019,08,09,. 『Stand News』. 「M+的廢話」; https://thestandnews.com/culture/m的廢話/ 번역 후 인용(번역: 요란).

[10] 알라이다 아스만, 채연숙, 변학수 옮김, 『기억의 공간 – 문화적 기억의 형식과 변천』, 서울: 그린비, 2011, p. 180 인용.

[11] 알라이다 아스만, 채연숙, 변학수 옮김, 『기억의 공간 – 문화적 기억의 형식과 변천』, 서울: 그린비, 2011, p. 185 인용.

[12] 알라이다 아스만, 채연숙, 변학수 옮김, 『기억의 공간 – 문화적 기억의 형식과 변천』, 서울: 그린비, 2011, pp. 188-189 인용.

[13] ICOM Definition of a Museum; http://archives.icom.museum/definition.html 참조.

[14] Oscar Ho, “Under the Shadow Problems in Museum Development in Asia”, Contemporary Asian Art and Exhibitions Connectivities and World-making, ANU Press, 2014, p. 10 참조.

[15] Carolyn Cartier, “Culture and the City – Hong Kong, 1997-2007”, China Review, Vol. 8, No. 1, Special Issue Hong Kong Ten Years after the Handover, Spring 2008, p. 60 참조.

[16] Pablo Helguera, Education for Socially Engaged Art: A Materials and Techniques Handbook, New York: Jorge Pinto Books Inc., 2011, p. 2 참조.

[17] 실천에 있어서 아홉가지 범주는 다음과 같다. ① 적용되는 미학(Aesthetics)이 사회적인 것(social)인가 예술적인 것(fine art)인가? ② 협업에 있어서 예술가의 역할(role/function of the artist)이 조력자(facilitator)인가 대리인(creative agent)인가? ③ 커뮤니티에 관여하는 데에 있어서, 공동체에 예술가는(origin of the artist) 속해 있었는가(rooted in) 외부자였는가(from outside)? ④ “작업”에 대한 정의(definition of the “work”)가 과정(process)을 가리키는가 생산물(product)을 가리키는가? ⑤ 영향을 끼치는 방향(direction of influence)이 참여한 커뮤니티 안쪽으로 향하는가(inward) 밖으로 향하는가(outward)? ⑥ 작업의 시발점(origination of the work)이 작가가 속한 커뮤니티 내부에서 기인하는가(community-generated) 커뮤니티 외부의 작가 개인으로부터 기인하는가(outside generated)? ⑦ 창작과정에 있어서 장소에 대한 태도(place)는 장소특정적(place specific)인가 그렇지 않은가(non place specific)? ⑧ 작품의 주제(issue)는 단일한가(single issue) 다양한가(multi-issue)? ⑨ 작업의 수행 기간(duration)이 단기간(short term)인가 장기간(long term)인가? Alexis Frasz, Holly Sidford, Mapping the Landscape of Socially Engaged Artistic Practice, Helicon Collaborative, Sept 2017, pp. 14-17 참조.

[18] 여기서 말하는 ‘고급예술’의 영역이 홍콩의 지역성을 말하지 못한다거나 단지 외래문화의 수입에 불과하다고 얘기하는 것이 전혀 아님을 밝힌다. 다만 적어도 ‘고급예술’의 영역은 근대기에 ‘서구’에서 유입되고 아시아 도시들이 문화적 윤색을 위해 적극적으로 들여놓은 미술관 제도에 알맞는 형태를 갖추었기에, 아카이브 범주 안에 어렵지 않게 들어서는 경향이 있다.

[19] 존스가 아카이브에서 미래완료시제를 발견한 것은 현재진행형의 퍼포먼스의 비교우위를 설명하기 위해서이다. 예술가의 아카이브 활용이 확대되면서, 퍼포먼스의 아카이브가 눈 앞의 현존재(Dasein)를 유발하는 퍼포먼스로 대체되고 이로 인해 퍼포먼스의 당시 찰나적인 속성이 퇴색된다고 본 존스는, 저장기술로서 아카이브를 다소 백안시한 측면이 있다. 아카이브는 미래의 한 시점에서 과거를 되돌아보듯 현재에 대해서 말하며, 이때 아카이브만이 유일하게 가능한 미래처럼 다루어진다. 이 경우, 아직 아카이브되지 않은 데이터 안에서의 삶은 미래를 향해 살아질 수 없는 삶에 불과해보인다. 그렇기에 존스는 이때 퍼포먼스가 기술로서의 아카이브에 저항 가능한 예술형태이자, 유일한 삶의 예술이라고 보았다. Simon Jones, “The Future Perfect of the Archive – re-thinking performance in the age of third nature”, Artists in the Archive, London : Routledge, pp. 301-323, June 2018, p. 276; pp. 296-297 참조.

[20] “In other words, a diagram can be used to show how power is distributed and it can also be the actual way in which power is distributed.” Patricio Dávila(Ed.), Diagrams of Power, Onomatopee 168, 2019, p. 5 참조.

[21] Oscar Ho, “Under the Shadow Problems in Museum Development in Asia”, Contemporary Asian Art and Exhibitions Connectivities and World-making, ANU Press, 2014, p. 11 참조.

[22]  클레어 비숍 지음, 단 페르조브스키 그림, 김해주, 현시원, 구정연, 임경용, 윤지원, 우현정 옮김, 『래디컬 뮤지엄 – 동시대 미술관에서 무엇이 ‘동시대적’인가?』, 서울: 현실문화, 2016, p. 103 참조.

[23] 클레어 비숍 지음, 단 페르조브스키 그림, 김해주, 현시원, 구정연, 임경용, 윤지원, 우현정 옮김, 『래디컬 뮤지엄 – 동시대 미술관에서 무엇이 ‘동시대적’인가?』, 서울: 현실문화, 2016, p. 99 참조.

[24] 알라이다 아스만, 채연숙, 변학수 옮김, 『기억의 공간 – 문화적 기억의 형식과 변천』, 서울: 그린비, 2011, pp. 189-190 인용.

[25] Oscar Ho, “Under the Shadow Problems in Museum Development in Asia”, Contemporary Asian Art and Exhibitions Connectivities and World-making, ANU Press, 2014, p. 12 참조.

[26] Simon Jones, “The Future Perfect of the Archive – re-thinking performance in the age of third nature”, Artists in the Archive, London: Routledge, pp. 301-323, June 2018, p. 276; 296-297 참조.

[27] “We need a map because different parts of this system don’t see each other. Whole bodies of practice are locked out of resources when they are not seen.”: Alexis Frasz, Holly Sidford, Mapping the Landscape of Socially Engaged Artistic Practice, Helicon Collaborative, Sept 2017, p. 7 참조.